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작심한 듯 초과이익공유제를 강도 높게 공개 비판하면서 그 배경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우리나라 최대 기업 총수의 발언은 그 자체로 재계 전체의 발언이나 마찬가지여서 정치인이나 관료의 발언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 회장의 이날 발언에 대해 그 동안 가슴 속에 품었던 말을 전경련 행사를 계기로 공식화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제도 자체에 대한 개인적 반감을 작심하고 드러냈다는 얘기다. 이익공유제는 단순화하면 대기업의 이익을 중소기업 등 협력업체에 나눠준다는 의미다. 물론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은 "대기업 이익을 나눠주는 게 아니라 연초 목표를 초과 달성할 경우 초과분으로 기금을 만들어 중소기업을 지원한다는 내용"이라고 설명했지만 대기업 정서상 양자간에는 별반 차이가 없다. 자본주의 질서에 반할 수도 있는 내용이어서 뼈 속까지 기업가인 이 회장 입장에서는 도저히 수용하기 어려운 제도인 셈이다.
이 회장의 발언이 재계를 대표한 것이었다는 정황도 뚜렷했다. 이날 행사에는 내로라하는 대기업 총수들이 16명이나 참석했지만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을 제외한 다른 총수들은 극도로 말을 삼갔다. 정 회장도 현대상선 지분 문제 등 자사 관련 사안에 대해서만 답을 했을 뿐 이익공유제에 관한 질문에는 입을 닫았다. 이 회장이 대표로 이익공유제를 비판한다는 암묵적인 합의가 있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대목이다.
마침 이날 행사도 우리나라 재계 대표라는 상징성이 있는 전경련 회의였다. 공교롭게도 정부를 대표하는 김황식 국무총리까지 만찬에 참석했다. 재계가 이익공유제에 반대하고 있다는 뜻을 드러내기에는 더 없이 좋은 자리였던 셈이다.
이와 관련해 전경련의 위상 강화를 노린 발언이라는 분석도 있다. 전경련은 1999년 김우중 당시 대우 회장의 퇴진 이후 상대적으로 작은 기업의 총수들이나 비(非)오너 경영인이 회장직을 맡아오면서 위상이 추락했다는 평가가 적지 않았던 터였다. 이 때문에 전경련 위상을 회복해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재계 7위 그룹인 GS의 허창수 회장이 신임 회장이 된 것도 강한 전경련의 부활을 원하는 재계의 여론 때문이다. 이 회장이 강도 높은 발언을 쏟아낸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물론 삼성이 이 제도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다는 점도 간과하기 어렵다. 삼성은 제도가 도입될 경우 공유해야 할 영업이익이 가장 많은 기업이다. 또 해외에 많은 협력업체를 보유하고 있는 글로벌 기업이어서 누구와 이익을 공유해야 할지 기준을 정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한편 행사에는 재계 총수들이 총 출동했다. 이날 회의는 허 회장이 제33대 전경련 회장에 취임한 뒤 첫 번째 회장단 회의였다. 이 회장은 전경련이 주관한 회의에 4년 만에 모습을 드러냈고, 정 회장은 고 정주영 명예회장 10주기 사진전에서 손님을 맞느라 뒤늦게 행사장에 도착, 김황식 총리를 초대한 가운데 열린 만찬을 이끌며 건배 제의를 했다. 구본무 LG회장은 참석하지 않았다.
박진석기자 jseok@hk.co.kr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이동현기자 na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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