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스캔들이 터져 나온 지 며칠 지났지만 핵심 인물인 덩신밍(鄧新明ㆍ33)씨 실체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지금까지는 덩씨가 비자 브로커 또는 스파이일 것이란 의견에 무게가 실렸다. 그의 소지품에서 상하이 총영사관 기밀이 발견되고, 또 비자 발급 민원에 개입했다는 증언들이 그 배경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보다는 다른 가능성들이 제기되고 있다. 실은 그가 현지에 진출한 한국기업들의 현안을 해결해 주는 비즈니스 브로커였고, 한중 관계의 민감한 문제에도 깊숙이 간여한 '로비스트' 역할도 했다는 것이다. 덩씨의 한국 내 인맥이 상하이 총영사관 외교관들을 벗어나 경제계와 정치권 인사에까지 퍼져 있다는 사실도 드러나고 있다. 정부 당국의 한 인사는 "덩씨가 2009년 9월 한국 내 지인을 만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것으로 안다"면서 "서울에도 지인이 많다"고 전했다. 경제부처 요직을 거친 국내 경제단체 한 간부의 경우 2009년 상하이 등에서 덩씨와 두어 차례 만난 것으로 파악됐다. 덩씨와 친분이 있는 인사들 면면이 확인되면 이번 사안은 새로운 국면을 맞을 수도 있다.
덩씨가 단순 비자 브로커 이상의 역할을 했다는 점은 다양한 채널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덩씨는 상하이를 방문하는 한국의 유명 인사들과 교류를 확대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덩씨가 이들과 상하이 당국 고위층의 만남을 주선했다는 점은 우리 당국도 인정하고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상하이 총영사관은 덩씨에게 거의 의존해 중국통이 없는 우리 외교의 맹점을 드러내기도 했다. 덩씨에 대한 총영사관의 의존은 그가 비자 등 이권에 개입할 여지를 높이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러나 상하이 고위층에 선이 닿아 있다는 점에서 덩씨는 한국의 대(對) 중국 현안을 푸는 해결사 노릇도 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2008년 11월 상하이 총영사관에 머물고 있던 탈북자 10명과 국군포로 1명이 필리핀을 경유해 한국으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덩씨가 중국의 협조를 끌어내는 데 모종의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지난해 상하이 엑스포 때 한국이 특혜성 조치를 얻어낸 배경에도 덩씨가 있고, 현지 중소기업들의 인허가 문제는 덩씨를 통해 해결됐다는 얘기가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탈북자와 국군포로 한국 입국 등 한중관계를 불편하게 만들 수 있는 사실까지 공개되면서, 이번 스캔들이 한중 간 외교 문제로 비화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사실 덩씨의 실체에 접근할수록 그가 중국보다는 오히려 한국을 위해 일한 정황이 더 자주 등장하고 있다. 덩씨가 비자 브로커라는 한국측 시각과 달리 중국 입장에선 그는 돈과 이권을 받고 한국을 위해 일한 로비스트인 셈이다. 덩씨의 실체를 모두 파헤치는 게 꼭 국익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 그래서 나온다.
정부 당국의 다른 인사는 "중국이 이번 사안을 문제 삼으면 한국에 역풍이 불 수 있다"며 "이번 사건을 잘못 처리하면 외교적 패착으로 귀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가령 덩씨가 개입한 인허가 문제 등에 대해 중국이 앞으로 원칙적 대응을 한다면, 그 피해는 우리 기업들이 입게 된다는 얘기다.
이태규 기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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