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곪은 성역, 교수사회] 7년전 대학비리 내부고발 김이섭씨
한국 교수사회의 내부 고발은 대개 죽은 이의 유서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2004년 김이섭(53ㆍ당시 연세대 강사)씨는 실명으로 학교 홈페이지에 독문과 교수들의 1억 2,000만원에 이르는 연구비 횡령을 폭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른바 '연세대 독문과 사태'를 부른 내부고발자 김씨를 지난 7일 연세대 종합관 제2외국어 강사실에서 만났다. 그가 강사 생활을 시작한 1990년부터 줄곧 출퇴근한 곳이다. 그는 "죽거나 정신을 놓지 않은 것이 기적"이라며 "폭로 이후 14년 동안 했던 강의를 빼앗기고 지금도 아무 강의가 없지만 매일 출근해서 연구활동에 전념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위의 따가운 시선에도 이곳을 뜨지 않는 건 '아직도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김씨는 최근 김인혜 서울대 음대 교수 사건 등을 거론하며 "교수사회는 7년 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연구비 횡령은 여전히 자행되고 있고, 교수들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간 자신도 "한 사립대 교수로 임용됐다가 갑자기 취소 통지를 받았고, 지방의 한 국립대에서는 내정자 때문에 억울하게 밀려났다"고 했다.
교수사회가 좀처럼 변하지 않는 데 대해 그는 "국내 대학의 발전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유럽 주요 대학들은 700~800년씩 도시, 시민과 함께 소통하며 성장했지만 우리는 격리된 캠퍼스 안에서 지식 쌓기에만 열중하고 아무런 감시도 받지 않았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사태 이후 김씨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연세대는 해당 교수들에게 2개월 정직과 견책 등 경징계를 내렸고, 그는 철저히 외면당했다. "후회는 없지만 현실은 냉혹했다"는 게 세상에 진실을 알린 그의 소감이다. 김씨는 "한국 사회의 '냄비'와 '님비'근성을 절실히 느끼는 시간이었다"고 담담히 말했다.
현재 그는 명지대 연구교수라는 직함을 갖고 있다. 명예직이다. 처우는 강의시간에 따라 보수를 받는 시간강사(월 100만~150만원)와 같다. 그는 "선생이 가르칠 수 없다면 존재가치를 상실하는 게 아니겠느냐"고 했다. 하지만 그는 1~2년 내에 강사직을 그만둘 생각이다. 고교 1학년인 아들이 커가면서 가계 빚도 덩달아 늘고 있기 때문이다. 마땅한 자리가 없으면 귀농도 생각하고 있다.
"교수는 배가 불러 터지고, 강사는 배를 곯는 세상입니다. 선생이 꿈을 꿀 수 없는데, 어떻게 학생들에게 꿈을 심어주겠습니까. '목줄'이 되는 연줄 대신 서로 평등한 인간띠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글·사진= 김혜경기자 thank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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