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지자체들 지원 중단… "월세 낼 돈도 없어" 재정난1년새 전국 29곳 개점 휴업… 학교 떠난 아이들 갈곳 잃어
"월세 47만원이라도 어떻게 해결됐으면 좋겠어요. 전기세 통신비 물값은 한 달에 총 10만원 정도 나오니 교사들 회비로 메울 수 있거든요. 그동안 저축해 놓은 쌈짓돈으로 버텼지만 내년엔 통장 잔고가 바닥을 드러낼 겁니다."
서울 구로구 섬돌야학에서 6년간 아이들을 가르쳐 온 이선권(36) 교사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작년부터 정부가 '청소년 야학'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면서 한해 1,000만원에 달하던 예산을 받지 못해 운영난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전체 15명의 학생 중 절반 이상이 청소년이었던 이곳은 지원이 끊긴 후 프로그램 마련 등이 여의치 않아 1년이 지난 지금 단 1명의 청소년도 남아 있지 않다.
청소년 야학이 사라질 처지에 놓였다. 예산배정 주체였던 보건복지부가 지원사업을 진행하지 않자 보조를 맞추던 지방자치단체도 덩달아 지원을 끊으면서 1년 새 운영이 급속히 위축된 것이다. 전국야학협의회에 따르면 전국 212개 야학 중 29곳이 재정난으로 개점휴업 상태다.
학교 밖 아이들은 느는데 수요가 줄었다고?
청소년 야학에 대한 냉대는 5년 전부터 시작됐다. 과거 문화관광부가 꾸준히 지원해오던 걸 2006년 국가청소년위원회가 담당하면서 '학생 중 청소년비율이 80% 이상'으로 지원기준을 강화했다. 기금이 다른 곳에 유용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정책당국자들의 안이한 인식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낮에 산업현장 등에서 일하고 밤에 공부하는 '주경야독'형 청소년들이 줄어든 만큼 야학에서 공부할 학생 수도 감소했다는 것이다. 청소년 정책을 담당하는 여성가족부의 한 관계자는 "요즘은 밤에 공부해야만 하는 환경에 놓인 학생이 거의 없으니 청소년 야학에 대한 보편적인 수요가 있다고는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일선 야학 교사들은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경기 성남시에 위치한 야학의 한 교사는 "예전보다 학교를 그만두는 청소년이 크게 늘어 우리 지역만 해도 한 해 1,600여명의 중고생이 학교를 떠난다"며 "이 중 가정에서 보호 받지 못하고 학원도 못 가는 아이들을 국가가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교육개발원이 발표한 '중고 학업중단 청소년 현황' 통계에 따르면 2006년 학교를 떠난 학생 수는 5만7,148명에서 2009년 7만2,086명으로 3년 만에 1만5,000여명이 증가했다.
마지막 등불은 밝혀야
박모(22)씨는 경기 성남시 디딤돌학교를 다니고 있다. 고1 때 가정불화와 학교생활 부적응으로 자퇴하고 1년간 쉼터를 전전하다 2007년 야학의 문을 두드렸다. 2009년 대입검정고시를 통과하고 지난해 취직도 했지만 아직은 사회에 적응하는 게 힘들어 퇴사하고 다시 야학을 찾았다.
그에게 야학은 보금자리다. "이곳이 없었다면 길 잃은 새처럼 아직도 방황하고 있었을 거에요. 고등학교 졸업도 힘들었겠죠. 어리광 많고 뭐든지 느린 제게 관심을 가져준 유일한 곳이랍니다." 실제 가정불화, 빈곤 등의 이유로 학교를 떠난 뒤 복지관 같은 지역기관에서도 적응하지 못한 청소년들에게 야학은 사실상 마지막 등불이다.
전문가들은 청소년 야학의 사회적 역할과 기능을 인정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대구가톨릭대 교직부 서근원(교육인류학) 교수는 "사회의 관심 밖에서 자칫 무기력해질 수 있는 아이들에게 야학은 사회규범과 정서적 안정, 생존 능력을 골고루 가르치는 곳"이라며 "구성원들을 보듬는 지역사회의 역할을 회복하는 데 야학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현수기자 ddacku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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