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건건 물고 뜯던 여야가 모처럼 뜻을 모아 3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려던 정치자금법 개정 움직임에 급제동이 걸렸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개정안 기습 처리가 대대적 비난 여론을 불러 일으킨 데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가능성까지 거론됐다는 점에서 당분간 개정 추진력을 되찾기 어렵다.
그러나 이번 개정 움직임이 사실상 무산 상태라고 여야가 완전한 실패로 여길 일은 아니다. 정치자금법 제6장 '기부의 제한'을 손댈 경우 금세 '청목회 입법로비 사건'과의 관련성이 부각될 것임을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국회의원이 눈치 없는 사람들이 아니다. 설사 여론의 몰매를 맞아 개정에 실패하더라도, 최소한 청목회 사건으로 기소된 6명의 동료 의원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성의 표시를 한 셈이다.
나아가 국회가 언제든 면소판결로 이어질 법 개정에 나설 수 있음을 환기한 것만으로도 재판에 미세한 영향이라도 미칠 법하다. 더욱이 비난 여론은 시간이 흐르면 풍화하는 반면, 한 번 열린 '오세훈법'의 손질 필요성에 대한 논의 공간은 커질 수 있다.
기업의 '위장 후원' 가능
현행 정치자금법에 분명히 문제는 있다. 2004년 총선 직전 당시 한나라당 오세훈 의원이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몸을 던져 개정에 성공한 현행 정치자금법의 핵심은 법인ㆍ단체의 정치자금 기부 금지다. 그때까지 법인ㆍ단체의 기부가 정치자금의 큰 줄기를 이뤘으니, 정치인들의 한숨을 자아낼 만했다. 정치자금 수수를 통한 정경유착을 근절하겠다는 취지에 비추면 당연히 주는 쪽과 받는 쪽 양쪽에 족쇄를 채워야 했다. 그러나 받는 쪽의 문은 단단히 닫혔지만, 주는 쪽의 문에는 큰 구멍이 뚫려 있다.
가령 개인의 소액다수 기부를 장려하기 위해 1회 10만원, 연간 120만원 이하의 후원금은 익명으로 기부할 수 있다. 선거가 없는 해의 국회의원 한 사람의 연간 한도인 1억5,000만원은 익명의 기부자 125명으로 금세 채울 수 있다. 충성심이 확실한 임직원 125명을 익명의 기부자로 동원하고, 나중에 특별상여금으로 메워줄 능력을 가진 기업은 많다. 125명을 다 동원할 수 없는 기업은 일부 임직원을 500만원 한도의 실명 후원자로 돌리면 그만이다. 과거와 달라진 것이라고는 줄 사람의 선택권을 기업이 일방적으로 갖게 된 점뿐이다. 과거 기업 후원금의 많은 부분이 '보험료' 성격이었음을 고려하면, 일방적 선택권은 특정 기업에 정치인을 더욱 심하게 옭아맨다.
한편으로 소액다수의 개인 후원자들 늘리자는 취지는 제대로 실현되지 못했다. 연간 10만원을 한도로 세액공제 혜택까지 주는데도 그렇다. 기부 문화가 여전히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달 비용'도 상대적으로 크다. 이런 현실은 앞으로도 한동안 개인 후원금에 전적으로 의존하기 어려움을 일깨운다.
결국 법인과 단체의 기부를 허용하되, 돈의 흐름을 철저히 공개하는 것만이 현실적 대안이다. 음성적 정치자금의 폐해에 대한 기억은 법인과 단체의 기부 허용이 곧바로 깨끗한 정치의 포기로 이어지리라는 우려를 낳는다. 따라서 허용하되 절차와 과정의 공개를 보장할 장치를 거치도록 해야 한다. 우선 떠오르는 게 로비스트와 로비회사의 허용이다.
개인기부 전적 의존 어려워
'로비'하면 흔히 '뇌물'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원래의 정치 선진국의 로비는 음성적 정치자금 수수를 햇빛 아래로 끌어내는 장치의 하나다. 정치자금법이 상정하듯, 정치에는 국회의원 한 사람에 최대 연간 1억5,000만원의 가욋돈이 필요하다. 비공식 정치자금 수요까지 합치면 이보다 많으면 많다. 이런 현실과 청목회 사건에서 보듯 로비스트가 아닌 '의뢰인' 스스로의 '로비'가 무성해 의원들이 교도소 담 위를 걷는 실정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면 국회에 등록된 로비스트의 공개적 활동은 최악의 경우 정치적 '필요악'일 뿐이다.
여야가 이번처럼 얕은 꾀를 부리기보다 먼지를 맞고 있는 로비회사 관련 법안을 본격 논의하는 게 낫지 않겠는가.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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