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일까, 이권 브로커일까, 아니면 그저 얽히고 설킨 불륜 스캔들의 주인공에 불과할까.
중국 여성 덩신밍(鄧新明ㆍ33)씨가 상하이 주재 한국총영사관의 영사 3명과 잇달아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일고 있지만, 그 정체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관련자들에 대해 정부 차원의 대대적인 감찰 조사가 이뤄졌음에도 당국은 물론 10년이나 함께 산 한국인 남편조차 덩씨의 정확한 실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2001년 한국 기업의 중국 주재원인 J(37)씨와 결혼한 덩씨는 딸(7)을 낳아 키우며 5~6년간 평범한 가정주부로 지냈다고 한다. 그러던 그에게 이상한 조짐이 보인 것은 2007년쯤부터. 남편에 따르면 “외삼촌이 상하이 당서기로 부임해 공무원으로 취직됐다”며 바깥으로 돌면서 한국 외교관들과 자주 만나더니, 급기야 지난해부터는 외박도 늘어났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아예 집을 나가버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덩씨는 그 동안 어떤 행각을 펼치고 다녔던 걸까. 한국 영사관 및 교민사회의 말을 종합하면 덩씨는 현지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실력자’로 통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기 전 상하이 총영사는 “상하이 당서기나 시장 등 요인들과 면담을 주선했고, 한 영사의 짐이 세관에서 문제가 됐을 때도 덩씨의 도움을 받아 해결했다”고 말했다. 중국 상층부와의 인맥을 바탕으로 민원 해결사 역할을 하며 한국 영사관과 ‘특수 관계’를 맺었다는 얘기다. 덩씨는 평소 11개의 전화번호를 따놓고 그 중 3~4개를 필요에 따라 사용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으로 볼 때 덩씨는 각종 이권에 개입한 브로커일 가능성이 크다. 그는 수년 전부터 한인 사회의 기업인들을 상대로 유력 인사를 소개해 주거나 업무상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등의 대가로 건당 수천만원(한화 기준)의 이득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상대방에게 세무조사 등을 들먹이며 협박까지 가했다고 한다.
최근엔 비자 발급 등 정부 관련 업무로 영역 확대를 시도한 것으로 전해졌다. 비자 발급 업무를 맡았던 법무부 소속 H(41) 전 상하이 영사에게 접근한 점, 실제로 이중 비자를 부정 발급받은 점 등이 주요 근거다. 국내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덩씨가 자신을 ‘덩샤오핑(鄧小平)의 손녀딸’이라며 사기를 치고 다녔다는 말도 있다”며 “스파이라고 보기엔 어설픈 구석이 많아 전형적인 ‘꽃뱀’이자 비자 브로커에 가까워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덩씨의 배후에 중국 정보ㆍ공안기관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덩씨가 보관했던 자료 중에는 상하이 한국 총영사관의 비상연락망과 비자 발급 기록, 한국 정부 내부통신망의 인사 정보, 정치권 인사들의 개인 연락처 등이 포함돼 있었다. 한국 국내 정보를 적극 수집하려 했던 정황이라는 점에서 스파이일 개연성이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 덩씨를 두고 ‘상하이판 마타하리’라고 하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이유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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