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 꺼진 캄캄한 무대에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무희가 나타난다. 이내 주위는 완전히 밝아진다. 어두운 표정으로 나타난 무희는 팔을 휘휘 저으며 원을 그린다. ‘얼쑤’ 추임새와 장구 소리가 흥을 돋운다. 춤꾼의 표정이 점차 밝아지더니 어느새 무대 가운데로 나와 바닥에서 소고를 집어 든다. 날랜 손이 북을 위아래로 훑으며 두드린다. 북소리에 따라 박수도 높아진다. 그리곤 조명은 다시 잦아든다. ‘얼씨구.’ 조명은 꺼졌지만 객석에선 환호가 터져 나온다.
서울 대학로 성균소극장(70석)에서 5일 열린 ‘춤으로의 여행’ 둘째 날 공연 가운데 정연희의 교방굿거리 한 장면이다.
선조들은 뭘 하며 놀았을까. 교방에서 벌어졌던 여흥을 대리 체험해 볼 수 있는 게 이날 공연의 관찰 포인트다. 3막은 색동 한복을 입은 정연희의 춤에 맞춰 장구 소리가 ‘텅’ ‘텅’ ‘텅’ 울리는 것으로 시작됐다. 자그마한 금색 칼을 든 춤꾼은 자유로운 팔짓으로 춤을 시작했다. 그리곤 손을 펴며 ‘자’하는 소리와 함께 애교스러운 춤사위를 이어갔다. 팔 동작이 잦아들더니 이내 금색 칼은 ‘칭’ ‘칭’ 소리를 내며 교차된다. 그리곤 정연희는 옷고름을 가다듬는다. 그는 한동안 자신의 가슴에 비수를 꼽을 듯 말 듯 교태를 부린다. 교방에 앉아 있던 선비라면 그를 냉큼 품에 안으며 달래지 않았을까. 마침내 무희는 칼을 내려놓으며 정갈하고 소담한 인사로 춤을 마무리 짓는다. 구음검무다.
이날 사회를 본 김정선은 “춘당 김수악(1926∼2009) 선생으로부터 이어지는 검무는 교방 예기들에 의해 널리 추어진 예술성 뛰어난 작품으로 춤의 연출 형식, 춤가락, 칼 쓰는 법 등이 예전의 법통을 지니며 전승되고 있는 전통 춤”이라며 “이날 작품은 김경란 선생에 의해 1인 안무로 재구성 연출돼 교방의 고즈넉한 기품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춤”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공연은 550평 남짓한 지하 소극장에서 벌어져 배우의 표정과 몸짓 하나하나가 그대로 전달됐다. 덕분에 관객은 ‘지화자’ ‘잘한다’를 연발하며 배우와 바로바로 감정을 주고받았다. 바로 옆에서 북 소리가 가슴을 울리는 현장성도 두드러진다.
이 공연을 올해 처음 전용공간운영지원사업 대상으로 선정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이정만 심의위원은 “전통 춤 공연으로서는 드물게 배우들이 땀과 호흡 등 인간적 모습을 바로 가까이 느낄 수 있게 하는 독특한 공연”이라고 말했다.
연극 등 서양 공연만 주로 올려지는 서울 대학로에서 장기간 전통 공연을 시도하는 것 역시 이채롭다. 이철진(한영숙승무살풀이 계승자) 한국춤예술센터 예술감독은 2009년 30일간의 ‘승무 여행’을 시작해 지난해에도 100일간의 ‘승무 이야기’를 진행했다.
외부 기금 지원을 처음 받은 올해 공연은 정연희무용단 서정숙 선경춤연구회의 전통 춤뿐 아니라 DCCD 안애순무용단 댄스컴퍼니마묵이의 현대무용, 평인이승주무용단 후무용단의 한국창작무용, 탄츠앤테아터샤하르의 발레까지 더해 5월 1일까지 60여일 동안 계속된다. (02)747_5035
김청환기자 ch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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