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성 없는 꿈 ‘취집’
‘취집’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는지요?
졸업을 앞둔 여성이 취업 대신 시집을 택한다는 조어입니다. 거국적인 IMF 쪼들림 당시 제가 언론 인터뷰에서 처음 사용했지요. 어느새 사회현상을 일컫는 용어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경제가 어려울 때면 결혼정보회사들이 ‘취집’ 현상과 관련한 설문조사 결과를 내놓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허황된 앙케이트들입니다. IMF 때 졸업을 앞둔 여대생들이 결혼정보회사 회원으로 많이 가입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0여 년이 흐른 지금 여성의 사회진출은 일반화했습니다. 취업의 대안으로 결혼을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경제가 어렵지 않은 때가 언제 따로 있었던가요. 오늘도 물가가 비싸 다들 힘들어하지 않습니까. 취집이 늘어난 것은 보편적인 현상일뿐 특정시기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신드롬은 아닌 셈입니다. 그럼에도 취집이라는 말이 계속 회자되는 것은 결혼이 경제와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이지요.
A라는 여성이 있습니다. 집안이 부유하고 인상이 좋습니다. 학벌도 무난합니다. 개인적으로 직장생활을 그다지 원하지 않았고, 부모들도 신부수업을 잘 받아 좋은 데 시집이나 가라고 권했습니다. 그녀는 맞선을 봐서 내조하는 여성을 원하는 사업가 집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말 그대로 취집을 한 것입니다.
그녀의 경우에서 보듯 취집이 가능하려면 집안이 좋고 외모도 좋아야 합니다. 여기에 해당하는 여성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남성 입장에서도 살림만 하는 배우자와 결혼하려면 경제력이 있어야 하는데, 이 역시 극소수이겠지요.
예전보다 사회생활이 힘들어졌고, 퇴직연령도 낮아지는 추세에서 남성들은 대부분 맞벌이를 선호합니다. 직업이 없다면 그만큼 결혼하기가 어려워진 세상입니다. 결국 취집이라는 말은 현실성이 결여된 것이라 하겠습니다.
결혼은 택일사안이 아니다
작년에 대학을 졸업한 여성 B는 1년 동안 직장을 알아보다가 여의치 않자 진로를 바꿨습니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느니 차라리 결혼이라도 하자는 생각으로 결혼정보회사에 회원으로 가입했지요. 취집을 선택한 것입니다. 학벌이 좋고 나이가 어린 덕분에 몇 차례 미팅이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교제가 진행될 만하면 상대로부터 번번히 딱지를 맞았습니다. 직업이 없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는군요.
이 와중에 일종의 편법도 성행합니다. 일단 일은 하되, 결혼하고 사직하는 방법이지요. C라는 여성이 바로 그렇습니다. 직장 구하기는 어렵고, 결혼은 해야겠고, 그래서 보수가 적어 상대적으로 취업에 용이한 회사에 취직을 했습니다. 이후 결혼을 했고, 남편의 동의하에 사표를 냈습니다. 처음부터 무직상태였던 것보다는 결혼 후 직장을 그만두는 것이 모양새도 좋으니까요.
워낙 결혼들을 늦게 하다 보니 졸업하자마자 결혼하는 것이 신기한 케이스가 됐습니다. 물론 취집의 의미라면 그리 바람직하지 못한 선택입니다. 무엇 대신 선택하는 방편이 결혼이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충분히 준비하고, 늦더라도 때가 됐을 때 해야 하는 것이 결혼입니다. 취업에 실패하면 다시 노력할 수 있지만, 결혼의 실패는 뼈아픈 후회와 상처를 남깁니다.
아무리 젊고 예쁘다 해도 취집 성공률은 그리 높지 않습니다. 남녀관계에도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적용됩니다. 취집도 그런 여성과 결혼할 남성층이 존재해야 가능한데,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취집이라는 말이 시대의 유물로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취집을 고집한다면 천연기념물 취급을 받을 수도 있겠지요.
■ 남녀본색
남성은 여자대학교 학생을 만남의 상대로 어떻게 생각할까.
결혼정보회사 선우 부설 한국결혼문화연구소는 대학교 혹은 대학원에 재학 중인 여자대학교 학생과 일반대학교 여학생에 대한 남성의 선호도를 매칭 수락율을 통해 조사했다.
그 결과, 여대에 재학 중인 여성들에 대한 상대남성의 매칭 수락율은 56.7%, 남녀공학에 재학중인 여성들에 대한 상대남성의 매칭 수락율은 52.1%로 나타났다. 여대 학생에 대한 상대남성의 매칭 수락율이 4.6%가량 더 높은 것이다.
여대 학생이 여성스럽고, 결혼생활도 잘 하리라는 남성의 기대치가 반영돼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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