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인물 하나하나의 얼굴이 어둡다. 누군가는 가해자로 불리고, 누군가는 피해자라 할만한 위치지만 그 경계는 모호하기만 하다. 그들 삶의 배경을 이루는 한국사회는 온통 차가운 콘크리트 색이다. 독립영화 ‘애니멀 타운’은 한국사회는 짐승조차 살기 힘든, 출구 없는 지옥도로 치닫고 있다고 역설하는 작품이다.
성철(이준혁)은 막노동으로 생계를 이으며 곧 철거될 낡은 아파트에서 한 겨울을 보낸다. 아동성범죄 전과로 전자 발찌를 찬 그는 성에 대한 강박증에 시달리며 일자리를 찾아 헤매지만 삶은 녹록하지 않다. 성철로부터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은 형도(오성태)는 생업인 인쇄업에 매달리려 하나 삶은 무의미하기만 하다. 형도는 우연히 성철을 보게 된 뒤 그의 뒤를 쫓는다. 성철은 자주 마주치는 빈한한 9세 소녀에게 마음이 향하고, 그런 성철을 보며 형도는 분노를 터뜨리게 된다.
서늘하고 서늘한 영화다. 상영시간 내내 돌덩이를 가슴 위에 올려 놓은 듯하다. 직설적인 폭력 묘사는 스크린에 간혹 투영되는데도 시종 폭행 당한 듯한 느낌을 주는 영화다. 성범죄자와 피해자, 임금 체불, 실직, 결식 아동, 불황 등 이 사회 밑을 흐르는 우울한 정서들이 스크린을 지배한다. 무거운 감정들이 쌓이고 쌓여 가슴에 고통을 안긴다.
이 영화 뒷부분에 산에서 내려와 도시를 헤매던 멧돼지가 차에 치어 죽는 장면이 등장한다. 먹을 것을 찾다 사람에게 쫓기어 죽은 멧돼지의 최후는 영화 속 여러 등장인물들의 운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영화는 그렇게 이 사회 구성원 대다수는 거대하고도 견고한 먹이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피해자와 가해자로 살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애니멀 타운’은 비정한 게임의 법칙이 지배하는 이 사회를 직유한 제목이라 할 수 있다.
좌절과 분노와 체념을 오가며 동물적 욕구를 해소하는 등장인물의 행동과 감정을 놓치지 않는 카메라가 미덥다. 목청 높여 메시지를 전달하진 않지만 공명은 꽤 크고 오래간다. 2008년 데뷔작 ‘모차르트 타운’으로 독립영화계의 주목을 받은 전규환 감독의 두 번째 영화. 그는 최신작 ‘댄스 타운’으로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인 포럼 부문에 진출했다. 10일 개봉, 청소년관람불가.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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