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에 충실해야 하나, 원작을 최대한 비틀어야 하나.’ 소설, 만화 등을 스크린에 옮기려는 뭇 제작자와 감독의 영원한 고민거리다. 원작의 고유성을 살리려니 식상하다는 반응이 두렵고, 영화적 창의성을 발휘하자니 원작 팬들의 원성이 거슬린다. 해결하기 어려운 오랜 과제에 대해 올해 한국영화 관객들이 한시적인 해답을 제시했다. ‘최대한 비틀어라. 그러면 흥행 문이 열리리라.’
6일까지 469만8,544명(영화진흥위원회 집계)을 불러모은 올해 최고 흥행작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감독 김석윤)은 김탁환의 추리 소설 을 밑그림 삼았다. 그러나 말이 원작이지 ‘조선명탐정’에서 원작의 흔적을 찾기 쉽지 않다. 굵은 뼈대인 구성만 겨우 살리고, 잔뼈와 살이라 할 캐릭터, 이야기 전개를 모두 바꿨다. 주인공의 활약과 추리에 초점을 맞춘 원작과 달리 영화는 웃음에 방점을 찍는다.
제작사 청년필름은 의 영화화 판권을 2006년 구입했다. 초반엔 원작 작가가 시나리오 작업에 욕심을 냈으나 한계가 있었다고 한다. 시나리오 작가 2명이 바통을 이어 받으며 새로운 창작이 시작됐다. 주인공 캐릭터를 좀 더 유쾌하고 코믹하게 가자는 게 목표였다. 크랭크인 전까지 시나리오를 스무 번 가량 고쳤다. 김조광수 청년필름 대표는 “소설의 구성은 좋지만 그대로 영화로 옮겼을 땐 재미를 주긴 쉽지 않았다. 관객들은 소설과 다른 영화적 재미를 원하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1991년 발생한 대구 개구리소년실종사건을 영화화한 ‘아이들…’(감독 이규만)도 김가원의 소설 에서 출발했다. 제작사 누리픽쳐스는 아이들이 산에서 사라진 게 아니라 한 부모에 의해 살해됐다는 가설을 내건 이 소설의 판권을 2007년 확보했다.
시나리오 작업만 3년 동안 이뤄졌다. 당초 원작을 살리려 했으나 시나리오 작업을 하면서 내용이 많이 바뀌었다. 부모의 아이 살해라는 소재만을 가져오고 자식을 죽였다는 의심을 받게 되는 부모들의 고통에 무게 중심을 두게 됐다. 누리픽쳐스 관계자는 “원작이 더 서스펜스가 있지만 아동 대상 범죄의 심각성을 환기시키겠다는 제작 의도와 맞지 않았다”고 밝혔다. ‘아이들…’은 6일까지 175만4,952명이 관람하며 흥행 순항 중이다.
원작을 곧이곧대로 필름에 담지 않으려는 게 제작자와 감독의 속성이지만 최근의 원작 파괴 바람은 관람 형태의 영향도 적지 않게 받았다. 젊은 층이 이야기보다 캐릭터에 더 집중하는 경향이 원작 비틀기를 더욱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김조광수 대표는 “요즘은 첫 주 흥행이 전체 흥행을 결정하는데 캐릭터에 대한 관객들의 호기심이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주장했다.
영화계엔 “원작의 고유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원작이 지닌 한계를 넘어야 하지만 원작이 지닌 매력까지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 영화 제작자는 “원작과 판이하게 다르면 굳이 판권을 구입할 이유가 있나. 영화적 재해석과 함께 원작이 지닌 향기나 주제의식을 담아내는 것도 제작자의 덕목”이라고 말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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