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제대로 보여준 진짜 가수들의 무대에 환호가 이어지고 있다. 김건모 이소라 윤도현 김범수 박정현 백지영 정엽 등 가창력 뛰어난 7인의 가수들이 6일 새롭게 선보인 MBC ‘우리들의 일밤(일밤)’의 서바이벌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에서 라이브 대결을 펼쳤다. 가요 프로그램을 퍼포먼스 위주의 아이돌 가수들이 점령하면서 립싱크와 기계음에 신물이 난 시청자들은 “귀가 정화된다” “오랜만에 진짜 가수들의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렸다”는 등 열광적 반응을 쏟아냈다.
그러나 실력파 가수들이 가요 프로그램에서는 밀려난 채 예능 프로그램으로 소비되는 현실이 씁쓸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들이 탈락의 부담을 안고 자존심을 접으면서까지 예능 프로그램에 나온 것은 그만큼 그들이 설 자리가 없는 까닭이다. 이소라는 방송에서 “너무 뭘 가리면 노래를 많이 할 수 없을 것 같아” 출연을 결심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진짜 노래 듣고 싶어하는 시청자들
‘나는 가수다’는 내로라 하는 톱가수들이 자신의 노래가 아닌 지정곡을 2주간 연습한 뒤 세대별로 안배한 500명의 평가단 앞에서 노래를 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매니저 역할을 맡은 박명수 이병진 김신영 등 개그맨과 짝을 이루는데, 평가에서 꼴찌를 하면 동반 탈락한다. 첫 회에선 본격 경쟁에 앞서 가수들이 자신의 대표곡을 부르고 평가단의 맛보기 투표가 진행됐는데, 가수들은 “전날 잠을 설쳤다”며 몹시 긴장한 모습이었다.
MC 겸 첫 무대를 장식한 19년차 가수 이소라는 ‘바람이 분다’를 부르기 직전 얼굴이 굳어지고 음성마저 떨렸다. 정엽(8년)의 ‘나씽 베터(Nothing Better)’, 백지영(13년)의 ‘총맞은 것처럼’, 김범수(13년)의 ‘보고싶다’에 이어 윤도현(18년)의 ‘잇 번스(It Burns)’, 박정현(14년)의 ‘꿈에’, 김건모(20년)의 ‘잠 못드는 밤 비는 내리고’까지 눈과 귀를 끌어당기는 열창이 이어졌다.
고전을 면치 못했던 ‘일밤’ 시청률은 평소의 두 배인 8.9%를 기록했다. 하루 게시글 10여건에 그쳤던 시청자 게시판에도 6일 방송 직후부터 7일까지 4,000여건의 의견이 폭주했다. 호평이 대부분이었지만 ‘노래 도중에 개그맨의 감탄사나 리액션을 넣어 흐름을 끊지 마라’는 편집에 대한 조언부터 이승철 이선희 박화요비 등도 출연시키라는 의견까지 다양했다. 이날 엄태웅을 첫 투입한 KBS2 ‘해피선데이-1박2일’이 20%가 넘는 시청률을 지켰지만 화제 면에서는 단연 ‘나는 가수다’가 앞섰다.
가수를 예능으로만 소비하는 현실
‘나는 가수다’나 최근 방송가를 강타한 ‘놀러와-세시봉 특집’에 쏟아진 뜨거운 반응은 그만큼 진짜 노래에 대한 대중의 갈증이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예능 프로그램에서 실력파 가수들의 재발견을 이끌어내며 화제를 낳는 현실은 아이러니하다.
‘일밤’의 김영희 CP는 아이돌 그룹과 댄스음악으로 편향된 방송 가요계에 진짜 가수들이 설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주겠다는 각오를 밝혔지만, 왜 지상파 TV에선 예능 프로그램이 그런 역할을 떠맡아야 하는 지는 여전히 커다란 물음표로 남아있다. ‘세시봉 특집’으로 인기가 오른 송창식은 최근 인터뷰에서 “(섭외할 때는)콘서트인줄 알고 나갔는데 예능 프로그램이었다”며 방송사 측에 불쾌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물론 ‘나는 가수다’는 방송 출연 기회가 적었던 실력파 가수들에게 주말 저녁 황금시간대에 대중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출연자 중 인지도 가장 떨어지는 박정현은 첫 방송에서 방청객들을 전율시키는 가창력으로 10대부터 50대 이상까지 고른 지지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그가 부른 ‘꿈에’와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는 방송 후 각종 음원 차트를 석권하며 다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나는 가수다’는 가수를 소재로 삼았을 뿐 본격 콘서트 프로그램은 아니다. 첫 회에서도 노래 그 자체보다는 오락적 요소에 방점을 찍을 수밖에 없는 예능 프로그램의 한계가 드러났다. 가수들이 노래를 부르는 도중에 “진짜 감동이다” 등 사족 같은 개그맨들의 반응을 끼워 넣는다든가 과도한 자막 처리 등은 노래가 주는 감동을 방해했다.
이 때문에 ‘나는 가수다’의 초반 폭발적인 반응이 새로운 예능 프로그램의 성과일 뿐 가요계 기여할 부분은 별로 없을 것이라는 부정적 전망도 나온다. 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씨는 “기성 가수들이 노래하기 앞서 긴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 이만큼 진지한 작업이라는 걸 보여준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이미 검증받은 가수들을 강도 센 오디션의 잣대로 평가한다는 게 지나치게 잔혹하고 흥미 위주로만 흐르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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