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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국가를 넘보는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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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국가를 넘보는 종교

입력
2011.03.07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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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性徹) 큰스님(1912~1993)의 말씀 가운데 유독 지금껏 기억하는 게 있다. 스님은 친견(親見)을 앙망하는 숱한 신도들을 “절에 중 보러 오나, 부처님 보러 오지”라고 꾸짖었다. 웬만한 운동선수도 힘겨운 3,000배를 부처님 전에 올려야 친견을 허락한 까닭이다.

스님이 1960년 대 팔공산 성전암에서 8년 장좌불와(長坐不臥)하실 때는 절 주위에 철조망을 치고 외부인 출입을 막았다. 어릴 적 들은 얘기로는 5ㆍ16 뒤 특명을 받은 장교가‘혁명의 장래’를 묻기 위해 찾았을 때도 산문(山門)을 열지 않았다. 권총을 뽑아 공포까지 쏘았으나 스님은 꿈적하지 않았다고 한다.

종교적 실천 넘어선 이기적 일탈

중년에 가톨릭 세례를 받았지만 어릴 적에는 절에 따라 다니면서 자연스레 불교와 가까웠다. 좀 특별했던 건, 초등학교 여름방학 때 어떤 연줄로 성철 스님이 계신 성전암에 머문 경험이다. 그렇게 가끔 찾은 성전암은 엄격하면서도 고졸(古拙)하고 마음 편한 청정 도량으로 여태 기억한다. 그 때문인지 여러 종교의 성소(聖所)를 찾을 때면 성전암을 떠올린다.

서울 봉은사 주지를 지낸 명진(明盡) 스님이 자신의 봉은사 복귀를 막기

위해 국정원장이 압력을 가했다고 주장한 모양이다. 지난해 떠들석한 논란

끝에 주지에서 물러나 동안거를 마치고 돌아온 그는 회주(會主)로 머물기를

원했다고 한다. 그러나 오랜 측근이던 주지 스님이 떠날 것을 권하자, 국정

원 압력설을 제기한 듯하다. 그는 “홀가분하게 버리고 떠나면 편안할 지

모르나, 한국 불교와 나의 희망이 좌절되는 이유를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명진 스님과 조계종, MB 정부가 어지럽게 얽힌 논란의 옳고 그름을 분명히 가릴 재주는 없다. 다만 남다른 법력으로 ‘대중을 매혹했다’는 이가 자신이 머물 곳을 놓고 격앙된 언행을 되풀이하는 것에는 그 수행과 공덕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는 지난해 조계종 결정에 반발해“승적을 불태우겠다”고 했다. 또 “총무원장은 이명박 장로의 하수인이 됐느냐”며“금생에 안 온 셈 치고 내 몸 바쳐 삿된 무리의 짓거리를 막겠다”고 다짐했다. 언젠가“성철의 목을 쳐서 마당에 던졌다”고 고승대덕의 경지를 뽐낸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비친다. 그저 이판승과 사판승의 차이일까.

중생을 제도하려는 이가 정부의‘종교 편향’을 넘어 4대강 사업과 대북 정책 등 국정 전반을 시비하는 것은 이른바 실천종교로 여길 수 있다. 그러나 “전쟁에도 불타지 않은 남대문이 폭삭 가라앉은 것은 이 땅의 무서운 앞날을 예고한 게 아닌가 싶다“고 설법했다니, 정부 비판을 넘어 국운을 계시하는 국사(國師) 자리에 스스로 오른 인상이다. 정부와 정치를 넘어 숫제 국가를 넘보는 듯하다. 대통령뿐 아니라 국가의 권위를 얕보는 것이다.

이 정부 들어 여러 종교와 불화가 두드러진 데는 대통령의 잘못과 실정(失

政) 탓이 크다. 그러나 걸핏하면‘정권 타도’와 ‘MB 하야’를 떠드는 행태는 종교가 국가의 제도적 권위를 제치고 스스로 사회와 국민을 이끄는 권력을 손에 쥐려는 듯한 인상이다. 개신교계가 이슬람채권법을 두고 정부와 국회를 압박하는 근본도 국가보다 종교의 권위가 크고 높다고 인식한 탓일 수 있다.

사악한 권력지향 반성을

국가조찬기도회에서 무슨 통성 기도로 대통령을 무릎 꿇게 한 목사는 바로 그런 이미지를 국민 앞에 연출하는 효과를 노렸을 것이다. 대통령이 대표하는 국가의 권위가 하나님과 교회의 권위보다 낮다는 것을 과시하려는 속셈이다. 옛 독일 황제가 교황 앞에 석고대죄한 ‘카노사의 굴욕’을 상기시킨 네티즌의 재치를 칭찬하기에는 교회 지도자의 삿된 짓거리가 개탄스럽다.

헌법의 정교(政敎)분리(Seperation of church and state) 원칙은 원래 종교조직과 국가의 분리를 뜻한다. 그게 국민국가의 토대이다. 국가 권력을 업신여긴 종교가 참담한 응징을 받은 역사를 기억한다면, 그야말로 통렬하게 반성해야 한다.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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