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의 특이함 가운데 하나는 복지에 대한 관점이 정치사회적 진보성 또는 보수성을 측정하는 규준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무상급식 문제를 놓고 그어진 전선은 정치권, 나아가 한국 사회의 보혁 경계선과 거의 일치한다. 근래 몇 차례 선거에서 복지라는 프레임이 지닌 소구력이 확인된 만큼 복지의 이데올로기적 범주화는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복지가 진보 보수와 본질적으로 결합하는 것은 아니다. 복지는 각 사회의 경제력과 문화가 복합된 제도적 수단일 뿐인지 어떤 이념의 전제나 실현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 정권 전복 위협을 느낀 사우디아라비아가 서둘러 수백억 달러 규모의 복지 지출 계획을 발표한 데서 볼 수 있듯 복지는 노동계급의 시민적 정치적 요구를 무마하는 방편으로 발전해 온 측면도 있다.
계간 황해문화 봄호(통권 70호)가 복지 논쟁을 깊숙이 들여다보는 특집 ‘복지 논쟁, 제대로 논의하기’를 마련했다. 작금의 논쟁이 과연 현실에 부합한 논의인지, 시민권의 제도적 뒷받침 없이 ‘복지국가=민주국가’라는 등식이 정당화할 수 있는지 등을 다양한 각도에서 고민한 결과물이 담겼다.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은 기고문 ‘정의 없는 복지 없다’를 통해 “복지가 진보의 핵심 의제여서는 안 된다”고 역설한다. 진보의 입장에 서 있는 김 소장은 “한국 특유의 고통 불안 증폭 구조는 낮은 복지 수준이 주된 것이 아니라, 일자리 소득 인재 권력(자리) 명예 등 핵심적 경제사회 자원을 분배하는 1차 분배구조의 불합리성이 주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한국의 진보가 “2차 분배구조를 개선할 ‘작은 복지’ 담론만 갖고 있을 뿐 1차 분배구조를 개선할 ‘큰 복지’ 담론, 즉 민주주의 담론을 갖고 있지 않다”며, 진보의 복지 담론을 “번지수 잘못 찾은 반신자유주의”에 갇힌 것으로 비판한다. 김 소장은 “복지만으로는 부족하다. 보수는 앞바퀴에 성장을, 뒷바퀴에 복지를 끼우면 될지 모르지만 진보는 왼쪽 바퀴에 복지를, 오른쪽 바퀴에는 정의를 끼우고 이를 평화와 도덕성으로 연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반면 홍경준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복지가 정치의 대세가 된 오늘의 사정을 긍정적으로 해석한다. 그는 기고문 ‘최근 복지국가논의의 정치경제적 함의’에서 1970년대 이후 미국의 경제적 양극화가 보수주의 운동에 의한 것임을 논증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의 이론을 인용하며 “복지의 문제는 정치의 문제”라고 강조한다. 홍 교수는 “1인당 GDP 같은 경제적 변수 못지않게 복지 발전을 결정짓는 것은 권력구조나 선거제도 같은 정치적 변수”라고 지적한다.
홍 교수는 그러나 현재의 ‘보편적 복지 대 선별적 복지’ 형태의 정치적 대립 구도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그는 “진보는 평등주의적 지향이 강한 스웨덴형 보편적 복지를 선호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진단한다. 하지만 그는 “스웨덴의 복지 원칙은 시기에 따라 상이했으며, 그것은 거시경제적 조건 변화와 그에 대응하는 사회민주당의 정치적 동원 전략에 의해 결정됐다”고 강조한다.
홍 교수에 따르면 스웨덴의 평등주의적 복지는 생애주기의 위험을 분산하는 복지로 이미 전환됐다. 그는 수직적 소득재분배 효과가 줄어들었음에도 스웨덴인들이 사회민주당을 지지하는 이유를 “사무ㆍ관리직 노동자 등 신중간층의 확대”로 꼽으며 ‘보편 대 선별’의 대립에서 탈피한 정치적 시각을 갖출 것을 주문한다. 또한 그는 “상대적으로 낮은 조세수입 구조를 개선해나간다 하더라도 복지 재정 확대를 위해서는 경제성장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김진석 인하대 철학과 교수의 기고문 ‘보편적 복지만 정답인가_약이면서 동시에 독인 복지’는 민주당이 내세우는 복지 논의에 비판의 초점을 맞춘다. 그는 민주당의 복지 담론에서 포퓰리즘과 복지만능주의를 찾아내 전자는 “착각”이고 후자는 “환상”이라고 꼬집는다. 김 교수는 비정규직 문제를 사례로 들며 “보편적 복지 체제를 구축하려면 다수의 노동자가 세금을 내야 한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다수 비정규직은 낮은 임금을 받으며 따라서 세금도 면제받는다”고 지적한다.
김 교수는 “복지에 대한 관심은 현재 삶을 위협하는 복잡한 사회적 위험과 폭력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조건 아래에서 그것들이 실행되는지, 또 그것을 예방하는 안전에 대한 요구가 강화할 때 어떤 효과들이 야기되는지를 묻는 물음의 틀 안에서 제기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복지는 평등을 증진시키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지만 그것 자체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약은 아니다. 오히려 사회적 위험과 안전을 관리하는 통치전략의 한 축으로 작동한다”는 것이 김 교수의 관점이다.
유상호기자 sh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