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 일본 외무장관이 30년 넘게 가족처럼 알고 지낸 재일한국인에게서 소액의 정치헌금을 받았다는 이유로 사임으로 내몰리자 일본의 정치자금규정법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영주외국인 참정권 부여를 논의하는 마당에 납세의무를 지며 수십 년 일본에 정주한 외국인의 정치헌금 때문에 장관직까지 내놓는 것은 지나치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마에하라 장관은 6일 사임 기자회견에서 “깨끗한 정치를 목표로 하면서 정치자금문제로 국민의 불신을 초래해 사죄한다”면서도 “(헌금을 낸)재일한국인은 중학 2학년 때부터 친교가 있고 정치에 뜻을 둔 뒤에도 지원 받아 왔지만 지금까지 헌금 받은 사실을 몰랐다”고 말했다. 마에하라 장관은 따라서 그 헌금으로 “직무에 영향을 받은 것도, 편의를 봐준 것도 없다”고 설명했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교토(京都)시에서 불고기집을 경영하는 헌금자 장모(72ㆍ여)씨의 아들은 “재일외국인도 공무원이 될 수 있는 시대에 정치를 응원하기 위해 돈 내는 게 안 된다고는 전혀 생각치 못했다”고 말했다. 장씨는 최근 5년 동안 매년 5만엔(68만원)을 헌금하면서 일본 이름을 썼고 이를 마에하라 전 장관에게 이야기한 적도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마에하라 전 장관은 예산관련법안 심의에서 야당 공세로 궁지에 몰린 집권당에 더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사임을 택했지만 당내에서는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를 비롯해 사임할 이유가 없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헌금자가 외국인이라는 걸 몰랐다면 법적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전례가 여럿 있어 사과문을 발표한 뒤 헌금을 돌려주면 끝날 일이었다. 언론인 도리고에 ??타로(鳥越俊太郞)는 “외국인 출자비율이 50%를 넘는 기업의 헌금은 허용하면서 일본에 정주해온 재일한국인의 헌금을 이렇게 문제 삼는 것은 차별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간 정부는 공석인 외무장관에 에다노 유키오(枝野幸男) 관방장관을 임시 겸직토록 하고 후임 인선을 진행 중이다. 후보로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초대 조선통감의 외고손자인 마쓰모토 다케아키(松本剛明) 외무 부장관, 경제산업장관을 지낸 나오시마 마사유키(直嶋正行) 의원 등이 거론되고 있다고 일본 언론들은 전했다.
도쿄=김범수특파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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