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2분내 '北 가상공격 진지' 초토화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2분내 '北 가상공격 진지' 초토화

입력
2011.03.06 17:30
0 0

[평팽한 긴장… 서부전선 최전방을 가다]"적의 도발, 두렵지 않습니다. 내 자신과 동료·우리 軍을 믿으니까요… "24시간 레이더 감시→기습도발 포착→좌표 전달·타격명령→K-9자주포 등 포화北 불바다 위협 이후 하루 6회 실전같은 고강도 훈련

3일 오전 군사분계선(MDL)에서 10여㎞ 떨어진 경기 파주시의 나지막한 야산. 육군1군단 예하 포병여단의 000관측대대가 위치한 곳이다.

대포병탐지레이더 AN/TPQ-37의 통제차량(shelter) 안에서 검은색 화면의 모니터를 노려보던 이재경(38) 상사의 두 눈이 번뜩였다. MDL 북쪽에서 출현한 직사각형 모양의 하얀 점이 남쪽을 향해 접근하고 있었던 것. 레이더에서 1초에 수십 번의 탐지빔과 확인빔, 추적빔을 발사해 새인지 포탄인지 수 초면 판별할 수 있는데 이번에는 적의 포탄이었다.

이 상사가 'alarm(비상경보)'이라고 표시된 버튼을 누르자 빨간 불이 켜지면서 '삐~이'하는 소리가 울리고 대형 지도가 떠 있는 다른 모니터에는 포탄을 발사한 북한군 240㎜ 방사포 진지의 위치와 고도가 표시됐다. 실시간으로 이 같은 정보를 보고 받은 여단 지휘통제실에서는 다시 표적까지의 거리와 발사각도 등 정확한 좌표를 계산한 타격명령을 000포병대대에 하달했다. K-9자주포와 다연장로켓(MLRS)의 포문이 일제히 표적을 겨누고 산등성이 너머로 불을 뿜으면서 적의 진지는 초토화됐다. 적의 공격을 탐지해서 초탄을 발사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2분. 가상의 북한군 기습도발에 대비한 훈련을 성공적으로 마친 장병들은 그제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지난 달 28일 시작된 한미 연합 키 리졸브 연습에 맞춰 '임진각 조준사격' '서울 불바다' 등 서부전선을 겨냥한 북한의 위협 수위가 부쩍 높아지면서 이 같은 상황대처훈련 횟수도 하루 2회에서 6회로 늘었다. 이 상사는 "유사시에는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1초라도 빨리 대응할 수 있도록 모의훈련을 반복 숙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관측대대의 레이더는 서부전선을 지키는 '눈'이다. 육군은 전략거점인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과 대북방송용 대형 확성기 설치지역을 비롯해 북한군의 포 진지를 24시간 중첩 감시하고 있다. 대대장 이홍장(학군22기) 중령은 "과거에는 드럼형의 종이용지에 표적이 찍히면 사람이 직접 지도를 펼쳐 위치를 확인했지만 지금은 모든 신호가 디지털로 처리돼 초 단위로 목표물을 파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레이더가 적을 감지하면 수㎞ 후방에 위치한 포병대대가 공격에 나선다. 유사시 가장 먼저 대응하는 '즉각 사격부대'다. 예전에는 절차만 숙지하다가 지난해 11월 연평도 포격 이후 실제 포탄을 다루는 수준까지 강도를 높였다. 심지어 예비병력도 전투복을 입고 대기하는 최고수준의 경계태세를 유지하고 있다.

적을 제압하기 위한 두뇌게임도 치열하다. 매일같이 위성사진을 보며 표적인 북한군 진지의 미세한 변화를 분석하고 워게임과 전술토의도 수시로 이뤄진다. 적의 공격을 받았을 때 장병들의 동요와 혼란을 막기 위해 전사자 영현처리 절차 등 세세한 부분까지 완벽한 체크리스트를 갖추고 있다. 1일 김관진 국방장관이 이곳을 방문해 "모든 도발유형에 대해 상상력을 발휘하고 끊임없이 토의하라"고 지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포병대대장 오우철(학사17기) 중령은 "지난해 천안함 사태만 해도 작전환경이 육군과 달라 잘 실감이 나지 않았지만 연평도 포격 때 적과 실제로 포탄을 주고 받는 모습을 보며 장병들이 엄청난 위기감과 경각심을 갖게 됐다"며 "적은 언제든 쏠 수 있기에 우리가 더 잘해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항상 되뇌고 있다"고 말했다.

철책선의 상황은 어떤지 보기 위해 경기 연천군에 위치한 전방관측초소(GOP)를 찾았다. MDL까지 불과 1㎞ 남짓 떨어진 데다 넓은 개활지가 펼쳐져 있어 우리 군과 북한군 모두 상대방의 움직임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곳이다. 가장 가까운 남북 경계초소(GP)간의 거리가 700여m에 불과해 언제든 총격전이 벌어질 수 있는 최전방이다.

최근 북한 GP에서 장교 복장의 10여명이 각자 쌍안경을 들고 남쪽 초소를 유심히 관찰하며 무언가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목격돼 긴장감이 고조되기도 했다. 다만 시민단체들이 날린 대북전단지가 가끔 바람을 잘못 타고 날아와 부대 안에 떨어지는 것 외에 아직 눈에 띄는 상황 변화는 없었다. 북한군 초병들은 여전히 직접 농사를 지어 식량을 자체 조달하고 있다고 한다.

돌아서는 기자를 향해 PVS-98K 관측장비로 북쪽을 주시하던 오마로(23) 상병이 한 마디 건넸다. "적은 반드시 도발합니다. 하지만 두렵지 않아요. 내 자신과 동료, 우리 군을 믿으니까요." 그들은 그렇게 소리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파주ㆍ연천=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