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 자녀 전 과목 과외에 명품 선물 줘도…논문·장학금 등 좌지우지… 거역은 꿈도 못꿔"좀 희생한다고 불평 불만" 생각하는 교수들도
서울의 한 사립대 인문사회계열 대학원생인 A(26)씨는 최근 대학원 동료와 심하게 말다툼을 벌였다. 논문심사를 앞두고 지도교수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이 동료에게 그대로 전했던 게 화근이었다. A씨는 "'논문심사 교수들과 식사를 해야 하니까 돈을 모아 달라'는 지도교수의 말에 얼마씩 갹출하자고 했는데 이를 이해하지 못한 친구가 화를 벌컥 냈다"며 "처음 있는 일도 아니고, 솔직히 교수가 해 달라고 하는데 안 할 수가 없지 않느냐"며 난감해 했다. 또 다른 사립대 사회계열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B(28)씨는 "지나가는 말이라도 교수가 선물을 갖고 싶다고 하면 학생 입장에서는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면서 "어떤 교수는 생일 등 기념일 선물로 '이거 아니면 안 된다'고 명품 브랜드를 콕 찍어 말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나 아니면 이 바닥에서 성공할 수 없다"며 공사 구분 없이 복종을 강요하는 교수 앞에서 학생들은 속만 끓인다. 유명 사립대 문과대의 한 대학원생은 "상납은 기본이고, 크고 작은 교수 심부름을 하다 보면 내가 학문의 길을 가는 것인지 교수 뒤치다꺼리 하기 위해 사는 것인지 자괴감이 들 때가 많다"고 푸념했다.
무소불위의 한국 대학 교수권력 앞에서 속절없이 휘둘리는 학생들의 사례는 셀 수도 없을 정도다. 양태도 가지가지다. "지난 한 해 동안 교수 아들에게 전 과목을 과외했는데 일반 과외비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의 수고비만 받았지만 교수는 고맙다는 말 한 마디 없었다."(K대 정경대 대학원생) "명절 때마다 교수가 지인들에게 하는 선물 포장은 우리가 다 맡는다. 직접 배달도 한다."(H대 미대 졸업생) "쇼핑 간다고 부르면 차로 데려다 주고 짐도 다 들어줘야 한다."(H대 사회과학계열 대학원생) "교수가 이사 가면 학생들이 총동원된다."(P대 대학원생)
이러한 교수들의 횡포는 도제식 교육에서 비롯된 악습이다. 도제식 교육은 학문 전수라는 미명 아래 학생의 삶 전반을 좌지우지한다. 한 사립대 사회계열 교수는 "예술 계열의 경우 학부에서부터 도제식 교육의 병폐가 구조화돼 있지만 인문ㆍ사회계열에서는 대학원에서 시작된다"고 말했다. 실제 대학원에서 지도교수의 권한은 학생들의 목줄을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지극히 현실적인 것들이고, 그래서 더 막강하다.
장학금을 누가 받을지에 대한 추천권은 물론 각종 프로젝트 참가 학생 선정, 연구비 배분 등도 다 교수의 권한이다. 수도권 한 대학의 조교 L(32)씨는 "교수가 '넌 안 돼'라고 하는 순간 학생은 수업료가 없어 휴학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유명 사립대 정경대의 한 대학원생은 "논문을 써야 하는데 교수가 관심을 안 가져주면 학생은 속된 말로 '답이 없다'. 논문심사 지도교수가 '이건 안 되겠는데' 하면 그냥 끝이다. 유학은 교수 추천이 없으면 꿈도 못 꾸는 게 우리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은 복종밖에 길이 없다. 부당한 처우에 항의하다 교수의 눈 밖에 나면 그야말로 끝장이다. 지도교수를 바꾸는 것 역시 가능한 대처 방안이 못된다. 한 여대 인문계열 대학원생은 "'이 놈은 안 된다'는 교수의 말 한 마디면 평생 한국을 떠나 외국에서 공부하는 수밖에 없다"며 "연줄이 얽히고 설킨 이 바닥이 그만큼 워낙 좁다"고 했다.
물론 교수 입장에서는 이를 "일부 문제 교수들에 국한된 것" 혹은 "학생들이 배워 가는 것에 비하면 소소한 희생"이라거나 "일상적인 불평불만"으로 여길 수 있다. 고려대 경영대의 한 교수는 "지금은 학생도 교수를 고르는 때다. 문제가 있는 교수에게는 학생이 가지를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지금 학생들의 불만은 윗사람 아랫사람 관계에서 나타날 수 있는 불평의 수준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문제 교수'들은 대학에 뿌리박고 있고, 학생들은 그 구조적 부조리에 좌절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것이 바로 문제다.
한양대 상경계열의 한 교수는 "그동안 교수와 학생 사이에 권위적이고 수직적인 권력 구조가 있어왔던 게 사실이다. 교수들이 학생들을 대할 때 '너는 내 덕분에 공부할 수 있고, 앞으로도 계속해야 할 거다'라는 인식 대신 이제는 학생들을 학문의 동반자라는 생각으로 대해야 할 때가 됐다"고 지적했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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