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주주총회 시즌이 시작됐다. 주총은 회사가 주인인 주주들에게 성과를 보고하고, 주주는 이에 대해 의견을 개진하는 자본시장의 '풀뿌리 민주주의' 현장.
민주주의 장점은 결국은 다수가 지배를 하더라도, 이 과정에서 소수의 목소리와 견제가 제도적으로 보장된다는 점인데 주총 역시 마찬가지다. 성공 여부에 관계없이 주총에선 대주주 및 경영진에 맞선 소액주주들의 반란이 줄을 잇는다.
올 주총 역시 문제 있는 몇몇 회사에선 소액주주와 대주주ㆍ경영진 간 일대 격전이 예상된다. 특히 불특정다수의 소액주주들을 이끄는 '리더'들의 활약이 돋보이는데, 기업 입장에서 보면 주총 때마다 등장하는 이들은 눈엣가시이자 저승사자인 셈이다.
소액주주 리더들
소액주주운동의 선봉장은 역시 장하성 고려대 교수. 오랜 기간 기업가치를 떨어뜨리는 경영진에 맞서온 장 교수는 올해도 어김없이 맹활약이 예상되고 있다.
일명 '장하성펀드'로 널리 알려진 라자드 한국기업지배구조펀드는 18일 열릴 태광그룹 계열 태광산업과 대한화섬 주총에서 대주주 및 경영진과 일전을 벼르고 있다. 2006년 설립된 이 펀드는 장 교수가 운영위원을 맡고 있는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로부터 컨설팅을 받고 있어 장하성펀드로 불리는데, 지난달 태광산업과 대한화섬에 대해 이미 주주제안 형식으로 현금배당 증액과 주식배당을 요구했다.
더욱이 장하성펀드는 태광그룹 대주주의 횡령 및 배임 혐의를 문제 삼아 이호진 회장과 모친인 이선애 상무를 포함, 경영진 퇴진을 포함한 지배구조개선도 제안한 상태. 그런 만큼 이번 주총에선 대주주측과 장하선펀드 간에 한치 양보 없는 설전이 예상된다. 다만 장하성펀드는 작년 주총에서도 태광산업과 대한화섬에 대해 배당 증액 및 이사ㆍ감사 교체를 요구했지만 당시 보유지분(태광산업 4.25%, 대한화섬 9.12%)이 너무 적어, 결과적으론 대주주 측에 완패한 바 있다. 이번에도 대주주를 이기기는 쉽지 않을 전망.
김선웅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장도 대기업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단골 저격수다. 오는 11일 주총을 앞두고 있는 현대자동차와 현대모비스, SK, 동국제강 등에 대해 각각 정몽구 회장, 정의선 부회장, 최태원 회장, 장세주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에 반대하며 제동을 걸고 있다. 박병원 전 청와대경제수석의 사외이사 및 감사선임 안건을 올린 KT에 대해서도 반대공세를 펼치고 있다. 10년째 대기업들의 독단적 지배구조를 문제 삼아 온 김 소장은 "회사의 이익과 총수 개인 및 그룹의 이해관계가 충돌할 수 있기 때문에 회사에 손해를 끼칠 수 있는 이런 이사 선임에 대해서는 반대한다"고 말했다.
코스닥의 저격수들
지난 해 소액주주들의 성창기업지주 경영참여를 이끌어 '개미들의 반란'을 성공시킨, 소액주주 연대모임 네비스탁의 김정현 대표는 이제 코스닥기업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됐다.
김 대표는 18일 코스닥상장사인 국보디자인 주총에서 '이사를 이사회 과반의 동의를 거친 뒤 주총에서 선임'토록 한 사측의 정관 변경 안건에 제동을 걸 계획. 현재 소액주주 지분 약 5%를 확보했다. 아울러 배합사료업체 케이씨피드에 대해서는 주식 거래 활성화를 위해 액면분할안건을 부쳤다.
구조조정전문 사모투자펀드 서울인베스트의 박윤배 대표는 대주주가 횡령ㆍ배임으로 구속된 인선이엔티를 향해 칼날을 빼 들었다. 30일 열리는 주총에서 오종택 회장 등 현 경영진을 전면 퇴진시킬 계획. 박 대표는 태광그룹 이호진 회장 일가의 편법 상속 및 증여 의혹을 제기해 검찰 수사를 촉발시킨 바로 그 인물인데, 주총에서 직접 대주주와 대결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보유지분 1%를 포함해 8일 현재 표를 위임받은 소액주주까지 확보한 지분이 약 6%에 불과해, 2,3대 주주인 올림푸스펀드(17%), 장하성펀드(5%)를 우호세력으로 끌어들이는 게 관건이다.
성공가능성은
갈수록 소액주주들의 목소리가 커지고는 있지만, 사실 개미들의 반란은 대부분 '달걀로 바위치기'나 다름없다. 그렇기 때문에 기관투자가들이 눈치보지 말고 좀 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주길 바라고 있다.
네비스탁 김 대표는 "소액주주들이 뭉쳐도 확보할 수 있는 지분은 5% 안팎에 불과해 대주주에 맞서기에 역부족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운용사 등 기관투자자들과 팀이 되지 않으면 승산이 없다"고 말했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김 소장은 "소액주주들이 과거에 비해 의결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고 있지만 대주주 전횡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며 "국민연금과 같이 거대자본을 갖고 있는 기관투자자들이 적극적인 의견 개진에 나서고 주주로서 권한을 행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문향란 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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