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2만 달러 대 중진국 진입에 성공한 국가의 대부분이 4만 달러 대 선진국 진입에 결국 실패한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도 양극화를 해소하고 공정사회 원칙을 바로 세우지 못하고 과거의 성장 방식에 집착한다면, 선진국 진입에 실패할 것이라는 교훈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지난해 7월 기업호민관으로 '공정거래' 구축을 통한 동반성장 화두를 제시한 데 보람을 느낀다.
핵심 벗어난 '이익 공유제' 논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이익 공유제' 를 놓고 시장경제 원칙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정운찬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의 양극화 해소를 위한 충정은 존경하나, 자칫하면 동반성장 논의가 핵심을 벗어나지 않을까 우려하게 된다. 잘하려고 하는 일이 오히려 전체 목표를 그르치는 경우를 많이 역사에서 보지 않았는가.
동반성장은 시장경제의 대원칙 하에서 추진되어야 한다. 억지로 대기업의 이익을 중소기업에 넘겨주라는 오해를 불러서는 안 될 것이다. 동반성장에는 두 마리 토끼가 있다. 한 마리는 공정거래라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필수과목이고, 또 한 마리는 상생이라는 대기업 자율에 맡기는 선택과목이다. 이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다면 가장 바람직하나, 상생으로 인하여 공정거래 추진이 위축되어서는 동반성장의 근간이 흔들릴 것이다.
시장경제는 시장에서의 가격을 포함한 협상력의 균형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협상력의 불균형을 초래하는 카르텔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협상력은 원천적으로 균형을 이룰 수 없기에, 공정거래법이 균형을 맞추어 주고 있다. 한국의 대ㆍ중소기업 간의 문제의 핵심은 시장경제의 기본원칙인 공정거래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 것이다.
예를 들어 중소기업이 불공정거래에 문제를 제기했다는 이유로 대기업이 보복할 경우, 법은 양벌제로 엄격히 규제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보복'의 입증 책임이 약자인 중소기업에 있는 현행 제도에서 대기업이 실질적인 처벌을 받은 사례는 거의 없다. 이에 따라 대기업은 부담 없이 문제를 제기한 중소기업을 응징하게 되고, 그 결과 시장경제 원칙이 훼손되는 현실이다. '보복금지 원칙' 하나만 중소기업 중심으로 집행되면, 궁극적으로 많은 불공정거래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미국에 진출한 대기업 임원이 한국에서와 같은 형태의 보복으로 인해 엄중한 실형을 받은 사례를 상기했으면 한다.
공정거래는 협상력의 균형, 정보력의 균형에 바탕을 두고 있다. 원가계산서와 같은 영업비밀, 특허와 같은 기업 핵심기술에 대한 요구는 이러한 균형을 파괴하는 반시장적 행위이다. 기업호민관실에는 너무나 많은 반시장적 불공정 사례가 접수되어 있다. 제조업에서 유통 문화 건설 소프트웨어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이러한 반시장적 행위를 바로잡는데 동반성장의 우선 목표가 설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동반성장 논의가 과정의 공정성보다 대기업의 시혜적인 행위를 통한 결과적 양극화 해소 논의로 비치는 것은 안타깝게 생각한다. 결과의 평등 추구는 자칫 반시장적으로 보일 수 있다. 불공정 거래로 얻은 이익의 일부를 상생이라는 명목으로 베푸는 것이 대한민국이 이룩해야 할 동반성장의 참된 모습은 아닐 것이다.
상생은 대기업 자율에 맡겨야
상생은 대기업의 자율적 판단에 맡길 일이다. 단지 상생을 추구하는 세계적 기업들의 성과가 좋다는 연구결과는 참고하자. 이를 강제로 시행하여 중소기업을 도와주려는 순간, 논의의 초점은 필수과목인 공정거래를 덮어버리게 된다. 그래서 2004년 참여정부 시절에도 호민인덱스에서 상생 협력 평가를 제외한 것이다. 상생이 주제가 되는 순간 대기업의 베풂에 동반성장 전체가 매달리는 꼴이 된다. 이익 공유를 포함한 지나친 상생 논의는 시장경제의 대원칙인 공정거래 확립에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음을 우려한다.
이민화 카이스트 교수 ·벤처기업협회 명예회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