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엔 미용실에서 얻어온 커다란 머리핀이 있다. 좀 촌스러운 분홍색이라 차마 꽂고 나가진 못하고 집에서 머리 손질할 때만 가끔 쓴다. 아이가 유독 그 핀을 좋아한다. 눈에 띌 때마다 자기도 꽂아달라 졸라댄다. 남자아이라 뒷머리가 길지 않아 할 수 없이 앞머리 한 움큼을 핀으로 집어주면 아이는 신이 나서 거울 앞으로 달려간다. 하늘로 솟아오른 앞머리가 우스운지 만지작거리며 한참을 깔깔댄다.
며칠 전에도 그런 아이가 귀여워 같이 웃다가 문득 거울에 비치는 모습이 자신이라는 사실을 아이가 알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얘기해주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더 어릴 땐 거울을 보여주면 그저 신기한 듯 쳐다보거나 만져보기만 했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심리학자 앨리슨 고프닉 교수의 책 에 따르면 아기가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알아보기 시작하는 시기는 18개월 정도다. 아기 이마에 몰래 스티커를 붙이고 거울 앞에 앉혀보면 알 수 있다는 것. 고프닉 교수는 18개월이 안 된 아기는 거울 안에 다른 아기가 있는 것처럼 행동하며 거울 속 스티커를 가리키지만, 18개월 넘은 아기는 스티커가 붙어 있나 확인하려고 제 이마를 만져본다고 했다. 37개월째인 우리 아이는 이미 그 수준을 넘어 자기 모습을 확인하려고 거울에 비춰볼 생각까지 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완벽한 자아(自我) 개념이 생겼다고 보긴 어렵다. 고프닉 교수는 같은 책에서 미국 루이지애나대 생물학자 대니얼 포비넬리 교수가 다양한 연령대의 아기들 이마에 스티커를 붙이고 노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은 실험을 소개했다. 자아 개념이 발달한 아기들은 영상을 보여줬을 때 자기 이마에 아직 스티커가 있는지 확인하려고 바로 이마를 만져봤다. 영상 속 과거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이 동일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얘기다. 또 영상 속 자신을 자기 이름으로 부르지 않고 '나'라고 지칭했다.
아직 우리 아이는 카메라로 찍은 동영상을 보여주고 누구냐고 물으면 신기해하며 이름으로 대답하는 정도다. 카메라를 보기만 하면 자기도 찍어보겠다며 이 버튼 저 버튼을 누르는 통에 제대로 '실험'을 해보진 못했지만.
아이가 거울 속 아기가 자신이란 걸 깨닫기 시작한 시기를 알아채지 못하고 놓친 게 못내 아쉽다. 평소 아이의 사소한 행동이라도 하나하나 좀더 세심히 살펴야겠다. 내 아이가 얼마나 자랐는지, 어떻게 자랄지는 어떤 검사법보다 엄마의 관찰로 가장 정확히 알 수 있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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