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교수 자리 억대가 기본…수도권大는 인맥 없으면 불가능"
서울 유명 사립대 인문학부 교수 A(52)씨는 술만 마시면 후배들에게 "이 바닥(교수사회)엔 아예 발들이지 말라"고 말한다. 그는 30대 초반에 박사학위를 받은 뒤 지방 사립대에서 6년 동안 시간강사를 했고, 전임강사도 두 번이나 맡았다. 하지만 아무런 연줄이 없어 수십 차례의 교수 임용 평가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그는 자존심을 버린 뒤에야 긴 강사 생활을 청산했다고 했다. 스승을 찾아가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 애원했다는 것이다. "평생 내 수발할 자신 있느냐"는 스승의 말에 그는 충성을 맹세했고, 룸살롱까지 가는 술 접대와 논문 대필 등을 심심찮게 했다. 그러자 금세 서울의 한 대학 전임강사가 됐다. 3년 뒤에는 모교에 정교수로 채용됐다.
한 해 배출되는 박사가 1만명을 넘는 시대, 지난해 4년제 대학이 신규 임용한 교수는 2,383명이다. 누적 인력을 감안하면 주요 대학의 교수가 되기 위한 경쟁률은 천정부지로 치솟을 수밖에 없고, 인사권을 쥔 교수들의 권력은 갈수록 커진다. 진리의 상아탑이라는 곳에서, 가장 불공정하고 비민주적인 교수 인사 시스템은 끊임없이 추문에 휩싸이면서도 건재하다.
죽음까지 불러온 임용 비리
지난해 5월 집에 연탄불을 피워놓고 자살한 고 서정민(당시 45세) 조선대 시간강사는 유서에서 "한국의 대학 사회가 증오스럽다"며 만연한 교수 임용 비리와 논문 대필 실상을 고발했다. 유서에는 "교수 한 마리(자리)가 1억 5,000만원, 3억원이라는군요. 저는 두 번 제의 받았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그는 지도교수의 이름으로 54편의 논문을 썼다고도 했다. 2000년 이후 7명의 시간강사가 비슷한 이유로 목숨을 끊었다.
교수 임용 비리는 오랫동안 대학가의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교수가 되기 위해 갈고 닦은 학문의 깊이는 임용을 좌우하는 다른 요인들보다 한참 후순위에 있다는 것을 모르는 지원자는 없다.
교수 임용 비리 유형은 크게 3가지, ▦매관매직 ▦제자 심기 ▦낙하산이다. 대개 서류, 연구실적, 공개강의, 면접으로 이뤄지는 임용 평가에서 정량적 평가가 가능한 연구실적 외 에는 심사자의 주관이 많이 작용한다. 사전 뒷거래 가능성을 내재한 평가일 수밖에 없다. 3~4명의 교수가 평가하는 한국과 달리 미국은 교수 임용 공개수업에서 학생들의 평가를 반영, 객관성을 담보하려 노력하지만 우리는 이런 게 없다. 이러다 보니 임용 공고도 나기 전에 "누가 내정됐다더라"는 말이 퍼지는 일도 흔하다.
지난해 3월 교수신문이 교수 임용 지원 경험자(현직 교수 포함) 51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교수 임용 제도는 불공정하다'고 답한 응답자(281명ㆍ54.6%)들은 '내정자를 정한 상태에서 형식적인 임용 공고'(42.3%)와 '학연ㆍ지연ㆍ혈연에 따른 정실인사'(28.2%)를 대표적인 이유로 꼽았다. 8.5%(44명)는 교수 임용에 지원하면서 금전 요구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돈과 인맥이 좌우
서울의 한 사립대 강사 B(30)씨는 "지방 사립대는 재정이 취약해서 돈이면 되지만, 전입금을 쌓아둔 서울, 수도권 대학의 경우 돈에다 고위급 인맥까지 있어야 가능하다"고 귀띔했다. "요즘 교수직 시세는 지방 사립대 전임강사 5,000만원, 조교수부터는 무조건 억대로 넘어간다"고도 했다.
교수가 학생 위에 군림할 수 있는 결정적 이유인 '도제식' 교육과 연줄의 힘 역시 막강하다. 서울 유명 사립대 대학원 재학생 C(26)씨는 "학내에서 발이 넓기로 유명한 교수의 연구실에서는 지난해에만 5명의 전임교수를 배출했다"며 "연구실마다 임용의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두드러지기 때문에 라인을 잘 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교육과학기술부 사학감사팀에는 교수 임용 비리와 관련해 "심사위원 5명이 모교 출신자를 선발하자고 사전 담합, 높은 점수로 채점해 합격시켰다"는 식의 제보가 쌓인다. 실제 지난해 하반기 이른바 'SKY'대학의 신규 임용 교수 중 모교 출신 비율은 절반 정도(서울대 52.5%, 고려대 65.0%, 연세대 46.4%). 파벌의 그림자는 짙었다.
"공부깨나 한다는 사람들은 그의 논문을 개그 수준이라 한다"는 비아냥을 받던 C(42)씨는 수년 전 박사학위 취득과 동시에 지방 사립대 교수 자리를 꿰찼다. 유명 사립대 부총장 아버지를 둔 덕이라는 뒷말이 무성했다.
임용 비리는 만악의 근원
교수 임용 비리는 왜 문제가 되는가. 무소불위의 교수권력을 키워주고 자질미달 교수를 양산해 결국 대학의 질을 떨어뜨리는 근원이기 때문이다. 지방의 한 국립대는 몇 년 전 어문계열 학과에서 시(詩) 전공자를 채용하겠다고 공고해놓고는, 내정했던 언어학 전공자를 시 전공자로 둔갑시켜 채용해 문제가 된 적이 있다. 임용 비리가 학문의 다양성과 균형을 해친 예다. 교수들부터 이러한 뒷거래와 편법으로 임용되는데, 비싼 등록금을 내는 학생들이 질 높은 수업을 보장 받기는 요원하다.
그런데도 교수 임용을 비롯한 대학 인사 문제는 그야말로 무풍지대다. 금품 수수를 해도 처벌할 규정조차 없는 대학이 대다수인데다 정부의 감시도 약한 편이다. 교과부가 운영하는 사학감사팀은 전국 356개 대학 중 많아야 한 해 5~6개 대학 정도 조사할 뿐이다. 사학감시팀 관계자는 "2005년 사립학교법 도입 이후 비리 접수 건수는 줄고 있지만 비리 유형은 크게 다르지 않다"며 "올해부터는 특정 분야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연간 30여개 학교를 조사하겠다"고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강사들은 "지방의 작은 사립대 같은 경우 교수 비리가 발생해도 징계위원회조차 열리지 않는다" "교수들이 학칙을 제정하는데, 자신들이 불리한 조항을 넣겠느냐"며 냉소했다.
김혜경기자 thanks@hk.co.kr
■ 7년전 대학비리 내부고발 김이섭씨
한국 교수사회의 내부 고발은 대개 죽은 이의 유서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2004년 김이섭(53ㆍ당시 연세대 강사)씨는 실명으로 학교 홈페이지에 독문과 교수들의 1억 2,000만원에 이르는 연구비 횡령을 폭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른바 '연세대 독문과 사태'를 부른 내부고발자 김씨를 지난 7일 연세대 종합관 제2외국어 강사실에서 만났다. 그가 강사 생활을 시작한 1990년부터 줄곧 출퇴근한 곳이다. 그는 "죽거나 정신을 놓지 않은 것이 기적"이라며 "폭로 이후 14년 동안 했던 강의를 빼앗기고 지금도 아무 강의가 없지만 매일 출근해서 연구활동에 전념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위의 따가운 시선에도 이곳을 뜨지 않는 건 '아직도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김씨는 최근 김인혜 서울대 음대 교수 사건 등을 거론하며 "교수사회는 7년 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연구비 횡령은 여전히 자행되고 있고, 교수들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간 자신도 "한 사립대 교수로 임용됐다가 갑자기 취소 통지를 받았고, 지방의 한 국립대에서는 내정자 때문에 억울하게 밀려났다"고 했다.
교수사회가 좀처럼 변하지 않는 데 대해 그는 "국내 대학의 발전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유럽 주요 대학들은 700~800년씩 도시, 시민과 함께 소통하며 성장했지만 우리는 격리된 캠퍼스 안에서 지식 쌓기에만 열중하고 아무런 감시도 받지 않았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사태 이후 김씨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연세대는 해당 교수들에게 2개월 정직과 견책 등 경징계를 내렸고, 그는 철저히 외면당했다. "후회는 없지만 현실은 냉혹했다"는 게 세상에 진실을 알린 그의 소감이다.
현재 그는 명지대 연구교수라는 직함을 갖고 있다. 명예직이다. 처우는 강의시간에 따라 보수를 받는 시간강사(월 100만~150만원)와 같다. 그는 "선생이 가르칠 수 없다면 존재가치를 상실하는 게 아니겠느냐"고 했다. 하지만 그는 1~2년 내에 강사직을 그만둘 생각이다. 고교 1학년인 아들이 커가면서 가계 빚도 덩달아 늘고 있기 때문이다. 마땅한 자리가 없으면 귀농도 생각하고 있다.
"교수는 배가 불러 터지고, 강사는 배를 곯는 세상입니다. 선생이 꿈을 꿀 수 없는데, 어떻게 학생들에게 꿈을 심어주겠습니까. '목줄'이 되는 연줄 대신 서로 평등한 인간띠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글·사진= 김혜경 기자 thank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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