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민주화 시위로 흔들리고 있는 중동의 동맹국들에 대해 '정권 교체(Regime Change)'가 아닌 '정권 변화(Regime Alteration)'라는 대응기조를 정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5일 보도했다. 정권을 지지하는 조건으로 민주화 개혁을 끌어냄으로써 시위대 요구에 부응하고, 중동의 안정이라는 미국의 국익도 지키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민주화 시위확산을 우려하는 중동 집권세력과 중동의 정세불안이 자국에 안보 위협이 될 것을 경계하는 이스라엘의 대미 로비가 크게 작용했다.
바레인의 시위가 절정에 달했던 지난달 말 사우디 아라비아를 비롯한 걸프협력체(GCC) 6개 회원국은 미국으로부터 정권 지지 표명을 끌어내기 위해 백악관과 국무부, 국방부에 대한 대미 로비 총공세에 나섰다. 무바라크 전 이집트 대통령의 '명예로운 퇴진'을 바랐던 이들은 미국이 냉정하게 나오자 분노를 표시하며 시위대에 동조하는 듯한 미국의 태도는 정정불안을 중동 전 지역으로 확산시킬 것이라는 우려를 강력히 전달했다. 특히 소수의 수니파가 정권을 장악한 바레인이 시아파 시위대에 무너질 경우 중동 수니파의 맏형 역할을 하는 사우디가 바레인을 침공할 수 있고, 이는 중동 정세를 걷잡을 수 없게 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도 제시됐다. 이스라엘도 워싱턴의 대미 로비창구를 총동원, 중동의 인접국들에 '버림받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이 이스라엘의 안보에 중요하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로비 전략은 먹혀 들었다. 이후 바레인 왕정의 유혈진압을 비난했던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정권에는 민주화 개혁 약속을, 시위대에는 정부와의 적극적인 대화를 촉구하는 선으로 물러섰다.
워싱턴=황유석특파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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