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0년대 인상파 화가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1841~1919)가 그렸던 ‘기대 누운 분홍색 원피스 차림의 소녀’가 경매에 나온다. 기록에 따르면 1956년 루마니아 출신 미국 영화배우 에드워드 로빈슨이 부인과의 이혼소송에서 패해 위자료를 마련하기 위해 그간 아껴 왔던 이 작품을 화랑에 내놓았다. 그해 작품은 한 그리스 선박왕의 손에 들어가게 됐고, 그로부터 20년 가까이 대중들은 작품을 보지 못했다. 작품이 공개석상에 다시 나온 것은 72년 6월 영국 런던 소더비경매. 당시 구매자는 세간에 알려지지 않았고, 작품은 다시 개인 수장고에 잠들었다. 이후 지난해 일본 신와(神話)옥션에서 주최한 경매에 한 일본 미술수집가가 경제적 이유로 이 작품을 내놓았다. 당시 낙찰가(수수료 포함)는 약 18억원 수준. 이 작품이 돌고 돌아 16일 국내 경매회사 K옥션이 주최하는 경매에 나온다. 추정가는 15억~18억원. 박선애 경매팀 과장은 “르누아르가 1881년 이탈리아 여행을 시작한 뒤 신고전주의자 앵그르의 작품 세계에서 영향을 받아 인상주의 화풍에서 탈피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미술 경매가 3월 본격 시작된다. 예술품을 투자 수단으로 전락시킨다는 인식 탓에 경매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이 있지만 경매는 일반 대중들이 쉽게 미술 시장을 이해하고, 흔히 볼 수 없었던 작품을 구경할 수 있는 기회다.
올해 경매에는 주로 한국 근현대미술과 고미술이 출품된다. 경기 호황 때는 현대미술과 신진 작가들의 실험적 작품이, 경기 불황 때는 근현대미술 고미술과 중견 작가의 작품이 안정적이어서 인기를 끈다는 속설이 있다.
10일 올해 첫 정기경매를 여는 서울옥션은 근현대 거장의 작품과 고미술 작품 125점을 내놓는다. 고미술 주요 출품작으로는 단원 김홍도와 오원 장승업 작품이 눈에 띈다. 단원이 그린 ‘서원아집도’는 중국 송대 학자 왕진경이 서원의 동산에 친구인 소동파를 비롯해 당대 유명인들을 초대한 모임이었던 서원아집의 풍경을 그린 것으로 추정가 3억~5억원에 출품됐다. 오원의 산수도 대표작 ‘호산어은도’도 출품됐다. 중년 이후에 원숙한 필묵법으로 그린 것으로 추정가는 1억5,000만~2억원이다. 이밖에 추정가 약 10억원에 나온 고려 시대 청동범종도 볼 수 있다. 근현대미술 작품으로는 김환기의 ‘대기와 음향’(추정가 10억원), 이중섭의 ‘가족’(12억원), 장욱진의 ‘월조’ (2억원) 등이 눈길을 끈다.
16일 K옥션이 주최하는 올해 첫 정기경매에는 총 183점의 작품이 나온다. 르누아르 작품을 비롯해 로버트 라우센버그, 데미안 허스트 등 해외 작가 작품들이 많이 출품됐다. 한국 근현대미술과 고미술 작품으로는 서민들의 삶을 토속적 색채로 그려낸 박수근의 ‘마을’(추정가 8억원), 담배 싸는 종이에 사람들의 뒤엉킨 모습을 그린 이중섭의 ‘은지화’(3,000만원), 겸재 정선의 산수화인 ‘해주허정도’(2억7,000만원), ‘달마도’ 작가로 유명한 연담 김명국의 ‘한산도’(2억2,000만원) 등이 출품된다.
이어 17일 첫 경매를 여는 마이아트옥션은 용 발가락 5개가 그려진 황실 도자기 ‘백자청화운룡문호’, 허주 이징의 흰 매 그림인 ‘백응박압도’, 2폭으로 이루어진 자수병풍 ‘십장생문자수2곡병’ 등 고미술 작품 200여점을 선보인다.
경매에 나오는 작품들은 전문감정위원이나 기관으로부터 검증을 마친 후 팔리며, 경매에는 각 경매 회사에 회원으로 가입한 후 전화, 서면, 현장 응찰 방식으로 참가할 수 있다. 경매 추정가격은 작품의 희귀성과 가치, 작가의 인지도, 전 경매에서 낙찰된 금액 등을 고려해 경매 회사가 정한다.
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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