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함성호 시인, 10년만에 시집 '키르티무카' 펴내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함성호 시인, 10년만에 시집 '키르티무카' 펴내

입력
2011.03.06 05:04
0 0

까닭 모를 허기에 시달려 다짜고짜 다른 이를 먹으려 드는 괴물. "그렇게 배가 고프면 자신을 먹어라"는 파괴와 창조의 신 시바의 말에 괴물은 자신의 두 팔다리와 몸통까지 먹어 치우고 얼굴만 달랑 남는다. 시바는 "삶이 무엇인지 극명하게 보여 준 예로, 누구든 너를 예배하지 않는 자는 나에게 올 자격이 없다"며 시바 사원을 지키게 한다. 흉측한 얼굴만 남은 이 괴물의 이름은 역설적으로 '영광의 얼굴'이라는 뜻의 키르티무카.

함성호(48) 시인이 10년 만에 내놓은 신작 시집이 바로 <키르티무카> (문학과지성사 발행)다. 이 강렬한 인도 신화 속 괴물은 인간 내면에 웅크리고 있는 괴물적 본성을 상징한다. 꿈 희망 사랑 화해 초월 피안 등 그럴듯한 이름을 인간의 욕망에 갖다 붙이더라도 그 밑에 도사린 것은 대상도 목적도 없는 갈급한 충동뿐이라는 냉혹한 인식이다. 첫 시집 <56억 7천만 년의 고독>(1992)에서 독설과 장광설로 현대 자본주의적 문명을 비판했던 그는 보다 근원적 인간 존재의 심연으로 나아간 셈이다.

함씨의 본업은 건축가. 지난 10년간 14채의 집을 설계하고 지었다는 그는 "집을 둘러싼 인간의 비루한 욕망을 가까이에서 보게 됐다"고 말했다. 그에게 이 욕망은 비판 대상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굴레로 시인이 어설픈 타협으로 이를 훈계할 게 아니라 냉정히 드러내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더듬는 그 괴물적 심연은 요즘 유행하는 라깡식으로 말하면 언어라는 상징적 질서로 편입되지 않은 실재계의 잔여물. 그러니까 '나'라는 자아, 그리고 사회적 의미체계에 갇힌 언어의 바깥이다. "바깥은 나를 있게 하고/나는 바깥을 상상하고 있다/그리고/그는 나에 대해 말이 아닌,/내가 잘 알아들을 수 없는/낯선 말로/나를 상상하고 있다"('어부림의 청중들' 중).

때문에 그의 시는 얼른 읽기 까다롭다. 신화적 사유와 이미지, 관념들이 충돌하고 인간의 들끓는 욕망들이 느닷없이 돌출해 독자를 당혹케 한다. 시를 통해 위안과 위로를 얻고자 하는 이는 접근 금지. 다만 자신의 정체 모를 욕망과 갈증에 괴로워하는 이들이라며 그 어두운 욕망의 흐름에 공감하며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정제되지 않은 언어의 소용돌이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시집은 내밀한 형식을 따르고 있다. 오케스트라의 합주곡처럼 여덟 악장으로 나눠져 제각각의 이미지들이 자유분방하게 휘몰아 치거나 변주되고, 그 중간중간 개별적 제목을 단 25편의 시들이 솔로곡처럼 삽입돼 있다. 함씨는 "인간이 가진 욕망의 문제에 천착하며 10년 동안 써 왔던 시를 주제별로 엮으면서 그 다양성을 담을 수 있는 형식으로 오케스트라적 구성을 취했다"고 말했다.

송용창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