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12월 뒷주머니에 막심 고리키의 에세이 문고본을 찔러 넣고 고향 함경남도 원산시에서 단신으로 월남했던 19세의 문학청년이 어느덧 팔순을 맞았다. 염상섭에게 처음 자신의 글을 보여 줘 격려를 받았고, 황순원에게 원고지 쓰는 법을 배웠으며, 미당 서정주와 첫 입맞춤을 하며 문단 생활을 시작한 이호철씨. 데뷔작 <탈향> (1955)을 시작으로 <판문점> (1961) <닳아지는 살들> (1962) 등의 빛나는 단편을 거쳐 <남녘사람, 북녘사람> (1996) 등에 이르기까지 분단 현실을 천착한 글쓰기로 분단 문학이란 큰 획을 그었고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두 번의 옥고를 치렀던 그 반세기의 격동이 이 노장에겐 모두 엊그제 일 같다. "일제 37년이라고 하면 무척 긴 세월처럼 느껴졌는데 내게 37년 전이 74년 문인간첩단 사건으로 국군 보안사령부 서빙고분실에 끌려갔던 해에요. 그 일이 어제 일처럼 생생해요. 참 빠른 세월이지요." 그 세월 함께 길을 걷고 산을 올랐던 진보적 인사들의 모임인 거시기산악회의 회원들도 하나둘씩 타계했다. 지난해 이영희 선생에 이어 올해 1월 이돈명 변호사까지. 남녘사람,> 닳아지는> 판문점> 탈향>
생생하게 잡힐 것 같은 자신의 어제적 삶과 문학을 이제 그도 정리해야 할 시기다. 11일 오후 6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연회실에서 팔순기념회를 갖고 지인과 제자들 87명의 글을 모은 기념문집 <큰산과 나> 를 출간하는 것 외에도 지난달 초 후배 문인들이 모여 이호철문학재단을 발족해 그의 문학을 국내ㆍ외로 알리는 토양을 마련했고 이호철문학기념관 설립도 추진 중이다. 큰산과>
그에게 남은 또 다른 일이라면 그간 자신이 체험하고 목격했던 한국 문단의 역사를 정리하는 것. 97년에 50년대의 문단 풍경을 담은 <문단골 사람들> 을 내긴 했으나 그때 풀지 못했던 이야기들과 그 이후까지 아우르는 문단 회고록 작업인데 그가 한국일보를 통해 그 일을 시작한다. 다음 달 6일부터 매주 수요일 본보 '삶과 글' 면에 글을 연재한다. 그는 "다양한 사람들이 겪었던 문단사가 있겠지만 내가 아니면 쓸 수 없는 우리 문단사를 더 늦기 전에 풀고 싶어요. 문학의 영향력이 실추된 요즘 문단 상황을 되짚어 보는 계기도 될 것이고요"라고 말했다. "이승만 정권 때 문화계를 쥐고 흔들던 임화수가 문화계 인사들을 동원해 정치 집회를 열 때도 문학인들은 동원하지 않았어요. 그런 정치 깡패도 문학은 건들지 않았던 거죠. 그게 북한 문학과 한국 문학이 갈라지는 결정적 지점이었어요. 요즘은 그런 문학의 권위란 게 있는지 의문입니다. " 문단골>
문학의 시대가 끝났다는 얘기가 적지 않지만 그는 "사회과학이나 철학이 담을 수 없는 문학의 영역이 분명 존재하며, 그게 바로 우리의 삶을 길러 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펴낸 소설집 <가는 세월과 흐르는 사람들> (글누림 발행)은 아예 KBS가 공모한 '해외동포 체험수기'를 그대로 소개하고 이에 대해 소견을 밝히는 형태로 구성돼 있다. 이씨는 "미학적 측면을 희생하더라도 실제 삶의 육성을 직접적으로 담고자 했다"고 말했다. 이런 게 소설일까 싶지만 날것 그대로의 원재료를 드러내는 노장의 시도는 소설의 진의에 대한 한 추궁일 수 있을 것 같다. "소설이 별 것이겠습니까, 사람 사는 이야기죠." 가는>
그는 분단 문학을 해외에 알리는 작업에도 힘을 쏟고 있다. <남녘사람, 북녘사람> 이 그간 영어 일어 중국어 독일어 등 10개국으로 번역됐는데 헝가리어 번역본 출간을 기념해 다음달 헝가리를 방문하고 여름에는 러시아도 찾는다. 남녘사람,>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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