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유·무기이권 흔들릴라"… 장기독재 '모른척'
누가 카다피, 무바라크 같은 괴물을 키워왔는가.
중동과 북아프리카 등 아랍권에 부는 민주화 바람이 거세다. 그 열풍에선 30, 40년 넘게 권좌를 차지해 온 독재자에 대한 불만과 함께 그들의 집권을 묵인해온 미국 유럽 등 서구 국가들에 대한 아랍 민중의 반감도 감지된다. 석유자원 확보, 무기판매 사업 같은 경제ㆍ정치적 이해관계, 특별히 대접받는 이스라엘 보호의 필요성, 이슬람 근본주의에 대한 공포감 등이 서구가 아랍에 이중 잣대를 들이댄 요인이라는 분석이 많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서방 선진국들의 아랍권에 대한 이중적 행태는 역사가 깊다. 대표적 사례는 2003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이라크 침공이다.
미국 등 서방의 이중적 행태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는 "(2003년 이라크 침공 당시) 미국은 후세인을 제거하고 이라크에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기 위해 전쟁에 나섰다고 했지만 그 말을 믿는 아랍인은 없다"며 "미국은 21세기의 몽골 (같은 침략자)"이라고 지적했다. 민주주의보다는 석유 이권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이집트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의 30년 장기 독재를 뒷받침한 것도 매년 15억 달러 이상의 군사 경제원조를 대준 미국이었다.
미국에는 1997년 통과된 레이히개정안(Leahy Amendment)이 있다. 인권을 억압한 군대에는 미국 자금을 지원할 수 없도록 한 법이다. 콜롬비아,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등에는 실제로 적용됐다. 이런 논리라면 시위대를 강제 진압한 바레인군에 대한 지원은 삭감해야 하지만 미국은 이제 조사를 해보겠다는 입장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했다. 미 5함대 기지가 있는 바레인의 전략적 중요성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유럽연합(EU) 역시 이중성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2008년 지중해연합을 만들었다. 공동의장은 이집트의 무바라크였다. 리비아의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에게도 EU는 불법이민 방지 자금으로 해마다 수천만 달러를 제공했다. 영국, 이탈리아도 리비아의 자국 기업 제재 무마와 로커비 테러범 인도 대가 등으로 자금을 지원했다. 독일 주간 슈피겔은 "EU를 탄생시킨 리스본조약은 '인간 자유 민주주의 평등 법치 등의 보편적 가치는 침해될 수 없다'고 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석유와 무기, 그 검은 유혹
그렇다면 서구는 왜 이들을 보호 혹은 묵인해왔을까. 일단은 경제적 이해가 컸다. 이 지역은 세계 최대 원유 매장지역이다. 미국은 70년대 석유파동 후 페르시아만, 홍해 등 원유수송로를 지키기 위해 현지에 잇따라 군기지를 만들었다. 83년 중동을 관할하는 중부군사령부, 2008년 아프리카사령부를 창설했고 5함대(바레인), 6함대(이탈리아)를 배치해 길목을 지키고 있다.
중동 국가들은 석유를 팔아 무기를 산다. 이들은 미국산 무기를 가장 많이 사는 나라들이어서 미국 입장에선 민주주의 보다 현상유지가 이익이다. WSJ은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등은 2011년 국방예산으로만 700억 달러를 배정했을 정도"라고 전했다.
경제적 이해관계는 변화보다 지역정세 안정을 우선시한다. 실제로 이탈리아 기업 100개 이상이 리비아에 투자했고, 리비아는 이탈리아 최대은행 우니크레딧 지분 7.2%, FIAT의 지분 2%를 보유할 정도로 양국 관계는 끈끈하다. 독일의 폭스바겐 BMW, 건설회사 빌핑거베르거 등은 사우디 UAE 등의 정치적 혼란이 자신들에게 타격을 줄까 우려한다고 슈피겔은 전했다.
이스라엘과 이슬람, 그 풀리지 않는 숙제
미국과 이스라엘의 특수관계도 무시할 수 없는 변수다. 1948년 건국 후 유대국가 이스라엘의 최대 보호자는 미국이었다. 그런데 이스라엘과 4차례나 전쟁을 벌였던 아랍국가 중 처음으로 평화협정을 맺은 게 이집트(79년3월)였다. 팔레스타인-이스라엘 간 평화협정 중재자도 이집트였다. 이코노미스트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팔레스타인 평화협정 중재에 치중하는 바람에 아랍 독재자들에 의한 수백만 민중의 고통을 간과했다"고 지적했다.
알카에다, 탈레반 같은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에 대한 공포도 영향을 미쳤다. 2001년 9ㆍ11 테러 이후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위해 지역 내 독재자와도 협력했다. 무바라크 퇴진에 대한 오바마 행정부의 오락가락 행보도 '무슬림형제단' 같은 이슬람 근본주의 집단의 집권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리비아 카다피가 자꾸 알카에다 개입설을 거론하는 것도 이런 약점을 알기 때문이다. 또 이슬람 신정국가 이란에 대한 견제는 중동 친미독재 묵인의 핵심 이유였다.
정상원기자 ornot@hk.co.kr
■ 유럽·남미·阿 정상등 카다피와 끈적한 관계 국제사회서 새삼 눈총
42년 철권통치 끝에 벼랑으로 내몰린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 잇단 기행과 괴팍한 성격으로 악명 높지만, 석유 판매로 벌어들인 막대한 부를 토대로 각국 정상과 끈적한 관계를 맺어온 사실이 새삼 화제가 되고 있다. 이중에는 리비아 소요사태로 카다피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국가의 정상들도 포함돼 있다.
유럽 정상 가운데 카다피와 친분이 두터운 사람은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 카다피는 2008년 베를루스코니를 규방파티에 초청했는데, 이때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붕가붕가 게임을 배워 자신의 방법으로 화답했다고 독일 주간 슈피겔이 보도했다. 지난해 봄 열린 아랍지도자 회의에 참석한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마치 교황에게 인사하듯 카다피의 손등에 키스까지 했다. 리비아 사태 초창기에는 카다피를 지지하는 듯한 발언을 수차례 언급,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정치, 경제적으로 가장 뭇매를 맡고 있는 인물은 토니 블레어 전 영국총리다. 2004년 카다피를 국제사회에 끌어냈지만. 동시에 이권을 챙긴 것으로 드러나 비난 받고 있다. 그는 카다피에게 이번 사태와 관련, 두 차례 전화를 걸어 국제사회의 압력의지를 전달했으나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남미와 아프리카 지도자들은 카다피와의 묘한 동질감 때문에 지지하는 분위기가 거세다.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남미 지도자 중 카다피와 제일 친분이 있다. 차베스 대통령은 재임기간 수차례 리비아를 방문, 칭찬과 선물을 아끼지 않았다.
다니엘 오르테가 니카라과 대통령과 피델 카스트로 쿠바 전 대통령도 카다피를 지지하고 나섰다. 로이터는 최근 리비아정부가 니카라과와 쿠바에 상당한 재정적 지원을 했다는 문서를 폭로했다.
카다피와 경제적 협력관계에 있는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과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은 리비아 사태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남미에서는 리비아와 경제적 교류가 거의 없는 페루만이 리비아와 외교관계를 끊겠다고 나선 상태이다.
아프리카 대륙은 대체로 자신들을 지원해준 카다피의 광기에 침묵하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제프 라데베 법무장관은 지난해 카다피에 소총 100정과 탄약 5만발을 팔았다. 카다피의 오랜 친구인 로버트 무가베 짐바브웨 대통령은 카다피를 지원하기 위해 지난달 22일 용병까지 보냈다. 이외에 라이베리아 찰스 테일러 전 대통령, 시에라리온의 포다이상코 전 반군지도자, 차드의 이드리스 데비 대통령 등도 카다피로부터 국경분쟁 중재나 반군 등을 지원받아 이번 사태에 대해 적극 나서지 않고 있다.
고은경 기자 scoop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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