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메아리] 박범훈, 엄기영, 정운찬…

입력
2011.03.04 12:04
0 0

대학 총장 한 분이 청와대 수석비서관으로 갔다. 청와대도 쑥스러웠던지 장관급 대우를 하기로 했다고 부연했다. 차관급, 장관급의 문제가 아니다. 아무리 대학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고 해도 대학은 그 나라 지성의 집합체고, 총장은 그 상징이다. 그런 자리에 있던 분이 청와대 참모로 오란다고 부리나케 가버렸다.

정치판에선 같은 언론사 사장을 지냈던 두 분의 재보선 대결 성사 여부가 흥미거리다. 선후배 간의 다정한 우정이나 미담은 고사하고 투견장에 몰린 싸움개 같은 구경거리가 돼버렸다. 이 중 한 분은 방송사의 심장 격인 보도국 수장을 지냈다. 수백 명의 해당 언론사 기자들에게 귀감과 사표가 되는 자리다. 그는 기자들에게 언론의 정치적 중립, 언론의 역할과 사명에 대해 쉼 없이 일깨웠을 것이다.

지도층의 끝없는 자리 욕심

또 다른 재보선 지역엔 국립대 총장을 지내고 총리까지 했던 분의 출마 여부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이분이 출마해 당선이 되면 초선의원이다. 선수(選數)에 따라 비중이 정해지는 국회에서 초선은 과거에 무엇을 지냈든 초선일 뿐이다. 때론 거수기 역할을 하거나 육탄돌격 같은 궂은 일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긴 대통령과의 친분을 업고 수십억 원의 연봉을 받는 금융기관장으로 간 대학 총장도 있는 마당이니 이 정도는 명함을 내밀 거리조차 안 되는지 모르겠다.

이모작, 삼모작이 대세인 시대에 한 우물만 파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파지 말아야 할 우물도 이 사회엔 분명 존재한다. 예컨대 대학 총장, 대법관, 검찰총장, 국방장관, 각군 총장, 편집국장 등이 그런 자리다.

선진국에선 전문 분야의 정상에 올랐던 사람이 국회의원에 출마하거나 권력의 한 자리를 차지하려고 아등바등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웃 일본만 해도 대학 총장이나 검찰총장 출신의 국회의원은 상상하기 힘들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정치권력을 최상의 가치로 여겨왔다. 각 분야의 최고 반열에 오른 뒤에는 으레 정치판에 뛰어드는 것을 당연시했다. 부끄러움도 모르고 자존심도 팽개친 채 그저 권력을 얻고 돈이 된다면 만사 제쳐놓고 달려갔다. 마지막으로 국가를 위해 봉사하겠다는 입에 발린 수식어를 꼬리표처럼 달고서 말이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권력으로부터의 자율과 지성인으로서의 역할을 다할 것을 가르치던 스승이 어느 날 권력의 귀퉁이에 들어가 납작 엎드려 있는 모습을 봐야 하는 제자들의 심정이 어떻겠는가를. 서슬 퍼렇게 정치인들의 비리를 찾아내 단죄하던 검찰의 수장이 하루아침에 정치에 뛰어들어 검찰의 정치인 수사를 비난할 때 검사들이 얼마나 자괴감에 시달리겠는가를. 정치적 공정성과 중립성을 외치던 언론계 대선배가 명분을 팽개치고 실리를 좇아 선거판에 뛰어들 때 언론인들이 얼마나 모멸감을 느끼겠는가를.

예전에 이런 일도 있었다. 검찰총장 하던 분이 그만두자마자 여당의 지구당위원장을 맡아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국회가 보완책으로 검찰총장이 퇴임한 뒤 2년 동안 다른 공직에 나서지 못하도록 하자, 검찰총장 등 수뇌부가 연명으로 헌법소원을 내 결국 위헌결정을 받아내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검찰총장이라는 명예보다는 권력에 마음이 끌리고 있음을 고백한 사건이었다.

명예와 권위는 스스로 지켜야

첫 여성 대법관을 지낸 김영란 국민권익위원장은 "수십 년간 공직에 있었던 분들은 돈 버는 것보다 다른 일을 찾아야 한다"는 뼈있는 말을 했다. 지난해 퇴임 당시 "로펌에 오면 연 100억 원을 받을 수 있다"는 잇단 '러브 콜'에도 변호사행을 거부하고 학계로 진출했던 그다. 그러나 이 발언이 있던 날에도 법원장 등 법관 12명이 무더기로 대형 로펌으로 짐을 싸 들고 갔다.

우리 사회에 원로가 없다고들 한다. 사회지도층 인사들은 원로들에 대한 대우를 제대로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예우를 기대하기 이전에 스스로 존경과 대접을 받도록 몸가짐부터 바로 해야 한다. 권력을 탐할수록 명예와 권위는 떨어지는 게 세상이치다.

이충재 편집국 부국장 cj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