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이 설립 반세기만에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한다. 농ㆍ축산물 유통에서 금융, 농업교육까지 모든 업무를 백화점식으로 망라했던 비대조직에서, 내년 3월부터는 경제사업과 신용사업이 분리(신ㆍ경분리)된 지주회사 형태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회는 4일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한 농협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법안은 이번이 없는 한 이번 임시국회 통과가 확실시된다. 이로써 1991년부터 논의가 시작됐던 농협개혁 작업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년간의 공방과 논란에 드디어 최종 마침표를 찍게 됐다.
새롭게 출발하는 농협은 중앙회을 정점으로 그 밑에 ▦농축산물 유통과 판매를 담당하는 농협경제 ▦은행 보험 등 신용사업을 담당하는 농협금융, 2개의 지주회사가 만들어진다.
이중 농협경제지주회사는 회장 밑에 각각 농업경제부문대표와 축산경제부문대표를 둔다. 그리고 판매 및 유통관련 자회사들을 거느리게 되는데 ▦농협사료 ▦목우촌 ▦하나로유통 등이 3년 내 먼저 편입될 예정이다.
현재 농협중앙회 직원(1만7,945명) 가운데 경제쪽 인력은 약 26% 수준. 대부분 금융쪽 업무에 투입되어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농협경제지주회사가 만들어지면, 이쪽 담당 인력을 대폭 확충한다는 계획. 농협 관계자는 "농업경제부문이 강화되면 유통 및 판매지원 기능이 대폭 활성화돼 일선 농민들은 오로지 생산에만 전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본격적인 농업유통구조개혁을 통해 소비자들에게도 많은 혜택이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농협측은 예상했다.
농협금융지주회사에는 ▦농협은행 ▦농협보험 ▦NH증권 등 금융계열사들이 자회사로 편입된다. 농협금융지주는 총자산규모가 200조원을 넘어, 단번에 KB 신한 우리 하나 등 기존 금융권 '빅4'그룹과 대등한 경쟁이 가능할 전망. 특히 이번에 별도법인으로 분리되는 농협보험은 방카슈랑스 규제 5년간 유예, 농협은행점포의 대리점 인정 등 다양한 혜택을 발판 삼아 보험업계에서 일대 돌풍을 일으킬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신ㆍ경분리 및 지주회사체제로 전환된 새 농협이 농업지원과 수익성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겠느냐는 점. 금융부문의 경우 워낙 지방점포 네트워크가 탄탄하고 농민들 생활에 깊숙이 뿌리 내려 있어 수익성 확보에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시중은행 및 보험사와의 본격적인 '금융대전'에서 이길 수 있을 만큼 경쟁력이 있느냐는 점은 숙제로 남지만, 그래도 이익창출능력은 갖추고 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하지만 경제사업 쪽은 다르다. 지금까지 농협은 금융에서 돈을 벌어 경제사업을 지원하는 방식이었는데, 지주회사 독립으로 이런 자금지원의 고리가 끊어짐에 따라 경제사업도 '자력갱생'이 불가피해졌다. 당장은 정부와 중앙회 지원이 이뤄지겠지만, 정교한 대비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경제사업 쪽 자생력은 떨어질 수 밖에 없고 자칫 '밑빠진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농협관계자는 이와 관련, "경제사업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대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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