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대륙 남서부의 가장자리,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나가는 길목에 위치한 포르투갈. 스페인과 함께 해양왕국의 지위를 누리던 화려한 추억을 간직한 나라. 하지만 지금 포르투갈은 유로화를 사용하는 17개 유럽 국가 중 14번째 빈국이라는 불명예스러운 타이틀을 벗어나지 못한 채, 재정위기로 다른 나라의 도움을 받아야 할 딱한 처지에 놓여 있다.
지난해 그리스와 아일랜드가 국제통화기금(IMF)과 유럽연합(EU)의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유럽 대륙의 재정불안은 수그러지는 듯했다. 하지만 유럽인들의 희망과는 달리 재정위기 우려는 포르투갈까지 전염되었다. 2월 들어 포르투갈 국채(10년 만기) 금리가 한계수준인 7%를 넘어서더니 연일 사상 최고치를 갱신하면서 유럽중앙은행(ECB)이 국채를 사줘야 할 형편이 되었다.
시장의 우려를 낳고 있는 포르투갈 경제의 리스크 요인들을 되짚어 보자. 그동안 포르투갈 경제는 낮은 생산성에 따른 잠재성장률 하락으로 저성장을 지속해왔다. 포르투갈은 미숙련 근로자 비중이 EU 국가 중 최고 수준에 이를 만큼 인적 자본이 미흡하며, 연구개발 투자도 부진한 편이다. 게다가 산업별 임금협상 비율이 60%로 높은 편이어서 개별 기업들의 생산성과는 상관없이 임금이 일률적으로 정해지고 있다.
이런 요인에 따라 생산성이 하락하여 90년대 연평균 3%대에 이르던 포르투갈의 잠재성장률은 2000년대 들어 1%대로 하락하였다. 2002년 이후 저성장세가 지속되고 있는데 지난해에도 1.3% 성장에 그쳐 유로지역 평균보다 낮았다. 올해도 역시 정부의 긴축조치 영향 등으로 다시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실업률도 10%를 상회할 것으로 포르투갈 중앙은행은 전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포르투갈 경제를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포르투갈의 재정상황은 금융위기 이후 크게 악화되었다. 금융위기 이전 국내총생산(GDP)의 3~4%대를 유지했던 재정적자 비율은 2009년 9.3%로 급등하였고, 정부 부채비율도 50~60%대에서 76%로 크게 악화되었다.
장기간 지속되고 있는 경상수지 적자도 또 다른 리스크 요인이다. 포르투갈은 80년대 중반 이후 경상수지 적자가 지속되어 2000년대 들어서는 GDP의 10% 내외까지 확대되었다. 이는 포르투갈의 수출경쟁력이 취약한 반면 일반 국민들의 높은 소비성향과 에너지 의존율로 수입이 크게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밖에 집권당의 정국 주도권 약화에 따른 정치적 불안정도 리스크로 들 수 있다.
유럽 재정위기의 불길이 더 이상 번져가기 전에 독일 등은 포르투갈이 구제금융을 지원 받기를 내심 바라고 있다. 그러나 구제금융이 필요 없다는 포르투갈 정부의 입장은 아직 요지부동이다. 포르투갈 국채를 경매하면 수요가 입찰 예정액의 3배에 달하는 등 시장에서 충분히 자금조달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한 구제금융의 금리가 그리 낮은 편이 아니라 실익을 기대할 수 없고 일단 구제금융을 받으면 과거 아르헨티나 등의 사례에서 보듯이 정상적인 자금조달이 가능할 때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고 조달비용도 높아진다는 점을 들어 구제금융을 거부하고 있다.
오히려 포르투갈 정부는 시장이 포르투갈의 리스크를 과대 평가하면서 정부가 이미 행한 많은 조치들은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있다고 반박한다. 실제로 포르투갈은 지난해 재정긴축 프로그램을 실시하여 재정적자비율을 9.3%에서 7.3%로 낮추는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시장 평가는 여전히 냉정하다. 올해 들어 포르투갈은 47억5,000만유로의 국채를 발행하는데 성공했지만 3~6월에 약 130억유로의 국채 상환이 예정되어 있다. 국채금리가 이미 크게 오른 상황에서 포르투갈 정부는 높아진 비용으로 기존 국채만기를 연장하고 새롭게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이 때문에 많은 전문가들은 외부의 자금지원 없이는 포르투갈이 올해 3~4월을 넘기지 못할 것으로 예상한다.
현재 포르투갈은 EU가 내민 도움의 손길을 잡을 것인지, 아니면 지금까지의 입장을 끝까지 고수하며 스스로의 개혁으로 재정위기 탈출을 시도할지 갈림길에 서 있다. 포르투갈이 현재의 경제위기를 과거 영광을 되찾는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한국은행 해외조사실 구미경제팀 김아현 조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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