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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리치 스토리] 프랑소와 피노 PPR그룹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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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리치 스토리] 프랑소와 피노 PPR그룹 명예회장

입력
2011.03.0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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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반 명품 업계는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구찌를 차지하기 위한 프랑스 거물 사업가들의 ‘쩐의 전쟁’으로 달아올랐다. 베르나르 아르노 LVMH(루이비통모에헤네시) 회장과 당시 쁘렝땅백화점 등을 갖고 있던 프랑스 유통거인 피노-쁘렝땅-흐두뜨(현재 PPR)의 프랑소와 피노 회장이 대결의 당사자다. 1999년 아르노 회장이 구찌 지분을 매집하며 인수ㆍ합병(M&A)을 시도하자, 구찌그룹 경영진은 명품업계와는 다소 거리가 있던 피노 회장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2년에 걸친 인수전에서 50억달러 이상을 쏟아 부은 피노에게 아르노 회장은 무릎을 꿇었고, 피노 회장은 2004년에는 지분을 99.4%까지 확대, 구찌 경영권을 완전히 차지했다. 아울러 구찌 뿐 아니라 이브생로랑 보테가베네타 부셰론 세르지오로시 발렌시아가 알렉산더맥퀸 스텔라매카트니 등의 브랜드를 거느리며, 단숨에 명품업계에서 아르노에 대적하는 최대 라이벌로 떠올랐다.

구찌가 피노 회장에게 넘어가면서 ‘한땀 한땀’ ‘한올 한올’ 수십년 경력 장인이 정성을 기울여 만들어내던 명품도 옛말이 됐다. 막대한 대기업 자본이 들어가면서 명품업계에도 라이벌 구도가 형성됐다. 프랑소와 피노(74) PPR그룹 명예회장이 럭셔리 업계에 진출한 지는 불과 10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 존재감은 묵직하다.

명품 구찌의 역사

아르노 회장도 탐낸 구찌의 역사는 1920년 이탈리아 피렌체에 문을 연 가죽제품 공방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창업주 구찌오 구찌(1881~1953)는 런던과 파리의 최고급 호텔에서 일하며 귀족 등 상류층의 패션에 눈을 떴고, 고향으로 돌아온 뒤 토스카나 가죽 장인의 숙련된 기술을 빌려 명품을 탄생시켰다. 그러나 구찌오와 세 아들이 다진 구찌의 가족 경영은 3대를 넘기지 못했다. 구찌오의 손자 마우리치오가 경영권을 잡지만 가족간 내분으로 회사는 엉망진창이 됐다. 90년대 초반 투자그룹 인베스트코프로 넘어가며 구찌 가문과의 인연은 끊어졌다.

구찌 가문과의 결별 이후, 구찌는 보다 젊고 더욱 거대한 명품 왕국으로 거듭난다. 빛 바랜 구찌의 명성을 되살린 건 미국 출신 디자이너 톰 포드였다. 90년 구찌에 영입될 당시 무명이던 톰 포드를 제품 디자인부터 매장전시, 광고캠페인까지 총괄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기용한 것이 대성공이었다. 구찌 가문이 고수했던 고루한 이미지를 벗겨내고 젊고 도발적 감각의 ‘톰 포드’식 구찌가 된 것. 톰 포드가 떠난 2004년 무렵 구찌는 이브생로랑 보테가베네타 등의 브랜드를 거느린, 기업가치가 100억달러에 달하는 명품 그룹이 돼있었다.

피노, 명품업계 거물이 되기까지

피노 회장의 성공은 끊임없는 기업 인수ㆍ합병에 있었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아버지의 제재소에서 일을 돕던 그는 처음에는 아버지 사업을 물려받아 키웠다. 27세에 소시에테피노라는 이름으로 세운 목재 유통회사가 그의 왕국인 PPR그룹의 모태가 됐다.

기업가로서의 명성은 90년대 들어 유통거인으로, 그리고 명품업계의 거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할수록 높아졌는데, 그 과정에는 어김없이 기업 인수가 등장했다. 특히 경영이 악화된 기업들을 헐값에 사들여 정상화시킨 것으로 유명했다. 91년 가구가전 유통업체 콘포르마 인수를 시작으로 유통업에 진출한 그는 프랑스 1위 백화점 쁘렝땅과 통신판매회사 라흐두뜨를 잇따라 손에 넣어 피노-쁘렝땅-흐두뜨 그룹을 갖췄다. 구찌를 인수한 뒤 그룹 이름은 PPR로 바뀌었다. PPR그룹은 2007년에는 스포츠용품업체 푸마도 손에 넣었다.

그가 럭셔리 업계로 눈을 돌린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피노 회장의 오른팔로 2005년 은퇴 때까지 15년간 PPR의 최고경영자(CEO)를 지낸 세르주 웽베르는 “유통업으로는 국제적으로 사업을 확장하기가 쉽지 않았으나, 명품 브랜드는 투자를 하지 않고도 아프리카부터 아시아를 가로질러 사업을 뻗어갈 수 있었다”고 했다. 구찌 인수도 철저히 사업적 마인드에서 시작됐던 셈이다.

피노 회장이 누리는 가장 고급스런 명품 취향은 미술품 컬렉션. 피노 회장은 미술업계에서 세계 최고로 이름을 떨치는 20세기 미술품 컬렉터이기도 하다. 파블로 피카소, 피에 몬드리안, 제프 쿤스 등의 작품이 포함된 2,000점 이상의 소장 미술품 가치는 대략 14억 달러에 이른다. 87억달러에 달하는 그의 재산 중 5분의1에 해당한다. 98년에는 세계적 미술품 경매회사 크리스티를 인수했다. 영국 피어슨그룹으로 넘어갔던 와이너리 샤토 라투르의 소유권을 93년 프랑스로 되찾아온 것도 피노 회장이었다.

2003년 피노 회장은 40년에 걸쳐 쌓은 PPR그룹의 경영권을 아들 프랑소와 앙리 피노에게 넘겨줬다. 맨 주먹으로 시작한 피노 회장에 비하면 비즈니스 스쿨을 졸업한 뒤, 그룹 주요 계열사를 돌며 경영수업을 거친 프랑소와 앙리 피노 회장은 카리스마가 부족하다는 평가도 있었다.

최근에는 젊은 피노 PPR 회장이 구찌그룹의 CEO를 겸임하겠다며 오너 경영을 선언, 루이비통에 대해 더욱 치열한 추격전을 예고하고 있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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