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지주회사의 금융자회사 소유를 허용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소관 상임위원회(정무위)를 통과한 지 벌 써 1년. 하지만 이 법안은 아직 본회의장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있다.
법안이라면 꼭 거쳐야 하는 법사위 문턱을 넘지 못했기 때문. 이번 임시 국회에서도 공정거래법 개정안 통과는 난망하다. SK CJ 등 이해관계가 걸린 대기업들은 이 법이 통과되지 않으면 금융계열사 주식을 처분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다.
이토록 법안 통과가 장기 공전되는 데 대해 주무부처인 공정위와 재계에선 "박영선 의원을 넘지 못하면 18대 국회에선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법안의 핵심은 ▦일반지주회사의 금융자회사 소유를 허용하되 ▦지주회사와 금융자회사 사이에 금융 부문을 총괄하는 '중간지주회사'를 둬 별도의 감독ㆍ규제를 받도록 하는 것. 3개 이상 금융자회사(보험사 포함)를 소유하고 있거나 금융자회사 총 자산규모가 20조원 이상일 때는 중간지주회사 설치를 의무화하는 내용이다. 한 마디로 지주사 체제의 재벌그룹들도 금융계열사를 둘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인데,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시너지 효과를 거두는 동시에 금융 및 산업의 동반 부실 등 '금융-산업결합' 폐해를 방지하자는 취지다.
일반지주사의 금융자회사 소유허용안은 2008년7월 처음 국회에 제출됐으나, 경제력집중과 금산분리 완화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야당 반대로 처리가 미뤄졌다. 그러다가 작년 2월 정부-야당간 협상을 통해 논의가 급진전돼, 4월에 법안이 정무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하지만 법사위에서 발목이 잡혀, 1년 가까이 계류상태에 머물러 있다.
기업과 공정위는 발 동동
이 법안이 처리되지 않으면 가장 먼저 타격을 입게 될 곳은 SK그룹. SK는 자회사인 SK네트웍스를 통해 SK증권을 보유하고 있는데, 현행 법대로라면 이런 형태의 금융 손자회사보유는 허용되지 않는다.
결국 SK로선 지주회사전환 유예기간이 끝나는 7월2일부터는 이런 식으로 SK증권 주식을 보유하는 게 불법이 돼 SK증권 지분을 팔거나 공정위 제재를 받게 된다. 같은 이유로 CJ그룹도 9월이면 CJ창업투자를, 일진홀딩스 등 일부 중견그룹도 연말까지 소속 금융회사를 매각해야 한다. 해당그룹의 한 관계자는 "해당 상임위까지 통과한 법안이 법사위에서 발이 묶여 기업들이 계열사를 매각해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공정위도 입장이 난처하기는 마찬가지다. 공정위 관계자는 "새 법을 우리가 만들었으면서도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아 금융계열사를 보유한 기업들을 재제해야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게 됐다"고 말했다.
반대 논리
당초 정무위에서도 야당은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대해 강하게 반대했다. 특히 박선숙ㆍ이성남 의원이 앞장을 섰는데, 이 법안이 일부 기업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되어 있다는 것. 공정위 관계자는 "정무위에선 두 의원을 어렵게 설득해 합의를 끌어냈는데 솔직히 법사위는 더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법사위에서 박영선 의원은 제2법안심사소위원장을 맡고 있어, 법안처리에 대한 영향력이 매우 크다. 재계에선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야당 여성의원들과 악연을 이어가고 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박영선 의원은 이에 대해 "이 법안을 나 혼자서 무작정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진 것은 잘못"이라고 전제한 뒤 "법안이 소급적용 원칙에서 문제가 있는 만큼 정무위를 통과했어도 법사위에서 얼마든지 심사할 수 있는 대상"이라고 말했다. 공정거래법 개정안 자체가 SK등 일부 기업이 현행 법을 위반해 금융회사를 보유하고 있는 '잘못된 상황을 추인하기 위해 만든 잘못된 법'이란 얘기다.
박 의원은 형평성도 문제삼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 (금융회사 보유를 금지하는) 현행 법을 준수해서 금융회사를 처분한 기업의 사례에서 보면 팔지 않고 버틴 기업에게 특혜를 주는 셈"이라고 말했다. LG투자증권(현 우리투자증권)을 매각한 LG그룹의 사례처럼, 법을 지킨 기업이 결국 손해를 보게 됐다는 논리다.
법사위는 이번 임시국회에서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대한 법안 심사 작업을 계속할 계획. 그러나 소위를 이끌고 있는 박 의원의 반대가 크고, 민주당 또한 다른 민생현안을 우선적으로 처리한다는 방침이어서 현재로선 법 처리는 기약이 없는 상태다.
이영창 기자 anti092@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