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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예쁜 여자 만들기' 여성의 외모…남성의 시선 따라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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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예쁜 여자 만들기' 여성의 외모…남성의 시선 따라 움직였다

입력
2011.03.04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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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아 지음

푸른역사 발행ㆍ344쪽ㆍ1만3,900원

책 제목만 보고 예쁜 여자를 만들어 주는 방법이 소개돼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아예 접어두는 게 좋겠다. 책은 예쁜 여자가 탄생하게 되기까지의 사회적 변화를 다룬다. 나날이 새로운 다이어트 방법과 성형수술 등이 각광을 받듯 외모지상주의가 여인네들의 삶에 스며든 배경 말이다. 저자는 여성들의 예뻐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사회와 남성이 만든 사회적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이쯤 되면 책의 내용이 대충 짐작된다. 외모가 사회적 성공과 연결되고, 남성들의 권위적 시선으로 여성의 외모가 재단돼 여성들은 더욱 예뻐지고자 한다는 뻔한 얘기지 싶다.

얼추 비슷하다. 하지만 역사적 인물과 사료가 촘촘히 엮여 저자의 주장을 탄탄히 떠받친다. 한국 근대사회 미인으로 꼽히던 여성을 둘러싼 다양한 에피소드와 평가도 흥미롭다.

책은 먼저 몸에 주목한 시대적 배경부터 훑는다. 그렇다면 한국은 언제부터 예쁜 여자에 대한 개념이 자리잡기 시작했을까.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한국 근대사회부터, 구체적으로는 1920년대부터다. 저자는 근대 서구 문물이 도입되면서 보는 것이 중요해지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1900년을 전후해 도시화 과정, 문맹률의 감소, 신문의 발간 및 대량 인쇄, 근대적 연극과 영화의 상연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짐에 따라 보는 행위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개항 초기 외국인들이 조선 여성의 사진을 찍었고, 신문에서는 당대 남녀 예인(藝人)의 사진과 소개 기사를 실었다. 연재소설의 삽화에 여성들이 대거 등장하게 된 것도 여성의 몸이 사회에 노출되는 데 일조했다. 이뿐 아니라 편리함과 위생을 강조하기 위해 의복을 개량했고, 그러자 짧아진 치마 밑으로 보이는 다리의 곡선에 대해서도 주목하게 됐다. 30년대 등장한 속옷 브래지어는 여성의 가슴 곡선을 더욱 부각시켰다. 저자는 “여성들이 남성의 시선에 노출되기 시작하면서부터 남성들이 ‘예쁜 여자’에 대한 미의 기준을 만들고, 여성들이 이런 기준에 끌려가면서 외모지상주의가 생겨났다”고 말한다.

당대 신문 잡지에서는 여성의 미를 평하는 글이 공공연히 실렸다. 소설가 현진건은 29년 잡지 별건곤에 ‘키가 조금 큰 듯하고 목선이 긴 여자가 좋다. 제 아무리 얼굴이 예쁘장하고 몸맵시가 어울려도 키가 땅에 기는 듯하고 목덜미가 달라붙은 여자는 보기만 해도 화증이 난다’고 했다. 화가 김용준은 ‘어깨가 좁을 것, 허리춤이 날씬하여 벌의 허리처럼 될 것, 둔부가 넓어야 할 것, 대퇴는 굵되 발끝으로 옮아오면서는 뽑은 듯 솔직해야 될 것’이라고 여성의 몸에 대해 조건을 달았다. 또 조선 여성은 서양 여성에 비해 어깨는 넓고 허리는 두꺼우며 대퇴부에서 종아리로 내려가는 곡선미가 너무 빈약하다고 한탄까지 했다고 한다. 이들이 노골적으로 여성의 몸을 평가하고도 돌을 맞지 않은 까닭은 시대를 잘 타고난 덕분이다. 책은 근대 조선 지식인들은 문명화한 사회에 대한 열망이 컸다고 전한다. 미에 대한 상식을 갖추는 것이 문명화했다는 것임을 증명하는 한 방편이었기 때문이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실상 처음부터 예쁜 몸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아니었다. 책은 중반부터 다시 1900년대를 돌이킨다. 몸에 대한 관심이 먼저였다는 점을 놓치지 않는다. 책에 따르면 서구 문물을 접하면서 한국 민족도 잘 발육하고 건강한 몸을 갖게 되면 우등한 문명 인종이 될 것이라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퍼졌다. 이는 여성의 몸을 보는 방식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여학교가 건립되고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제도들이 제고됐다. 당시 여성의 외출이 권장됐는데 이는 여성이 건강해지기 위해서이며, 여성이 건강해야 건강한 자녀를 낳을 수 있다는 생각이 사회적으로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책은 여성의 미의 기준을 만들었던 한국 근대사회를 되돌아본 후 당대 여성의 삶을 파고든다. 한국 최초의 쌍꺼풀수술을 한 미용사 오엽주의 삶과 남편을 살해했지만 뛰어난 미모 덕에 형을 줄일 수 있었던 김정필 얘기도 소개된다. 그러면서 점차 여성들 스스로도 아름다워야만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며 화려하게 살 수 있다는 사실을 간파하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더불어 여성들은 화장품 옷 구두 액세서리에서부터 성형수술로 이르기까지 상품을 소비하는 막강한 경제주체로 떠올랐다는 설명까지 가능해진다.

하지만 책이 40년대 들어 일제 강점 하에 자녀 생산과 양육 등 건강한 모성으로서의 여성을 강조했던 시기나 그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의 변화에 관해 적당히 얼버무린 점은 좀 아쉽다. 저자가 국가로부터 규정되는 여성의 미의 기준을 탈피하고자 내놓은 대안들도 미적지근하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 장미란 선수가 보여 준 성취에 대한 숭고함과 같이 미의 다양한 기준을 만들자는 것과 예쁜 여자 권하는 사회에서 고통받는 여성을 품어 줄 여성연대와의 소통 등이 그가 내놓은 대안이다.

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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