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의 운명을 바꾼 해도/량얼핑 지음ㆍ하진이 옮김/명진출판 발행ㆍ463쪽ㆍ2만2,000원
지구는 둥글다는 명제를 최초로 제시한 사람은 그리스 수학자이자 철학자 피타고라스였다고 한다. 창조설 이외의 대안이 없던 그는 가장 완벽한 기하학적 형태로 원형을 상정하고, 신의 작품인 지구 역시 둥글 것이라고 규정했다.
중세인에게 세계는 구약성경의 기획대로 구획된 곳이었다. 대홍수 직후 노아가 세 아들 셈과 함, 야벳에게 땅을 나눠 준 결과, 세계는 ‘T’자 형태의 강(江) 경계에 의해 아시아와 아프리카 유럽으로 삼등분돼 있었고, 땅의 바깥은 원형의 바다가 에워싸고 있었다.
13세기 나침반의 전래와 항해술의 발달은 해도(海圖)를 정교하게 했고, 정교한 해도는 제국주의열강의 식민지 경쟁을 부추기며 서로 상승 작용했다. 당대 가장 빼어난 해도를 지닌 나라는 거의 예외 없이 세계를 지배했다.
이 책은, 제목처럼, 해도의 변천사를 통해 세계사의 흐름을 되짚어 보는 책이다. 중국의 저널리스트이자 해양문헌박물관 건립에 참여했었던 저자는 가장 오래된 세계지도인 고대 바빌로니아의 점토판 지도(BC 6~7세기)에서부터 지난 세기의 항공측량지도에 이르기까지 100여컷에 이르는 주요 지도들을 펼쳐 보이며 유럽의 역사는 바다에서부터 시작됐다고 단언한다. “수천 년 동안 인류는 항해를 함으로써 주변 세계를 인식하고, 해상권을 장악함으로써 세력 범위를 넓혔다. 해도는 인류의 세계관과 가치관의 발전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고대 해도를 살펴보는 것은 지도로 만든 세계사를 읽는 것과 같다”(프롤로그).
포르투갈 탐험가 바르톨로뮤 디아스가 희망봉에 닿았던 것은 1488년이었다. 당시의 탐험가들은 남위 22도(나미비아 서해안)까지 진출해 있었는데, 디아스는 거기서 위도상으로 12도를 더 내려갔다. 그럼으로써 아프리카 대륙이 남극 대륙과 이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렸고, 결과적으로 인도양 항로를 열었다. 희망봉이 세계 지도에 처음 명기된 것은 그로부터 10년 뒤인 1498년 독일인 헨리쿠스 마텔루스가 <지중해의 섬> 이라는 책을 출간하면서 첨부한 지도를 통해서였다. 그 덕에 포르투갈은 세계 최강의 해상왕국으로 군림할 수 있었다. 지중해의>
저자는 9대 해협과 극지방의 발견 경위, 숱한 해전과 식민지 쟁탈 등 역사적 사실들을 해도 변천사를 통해 흥미롭게 소개한다. 트라팔카해전 등 주요 해전과 캐리커처 지도 등도 다채롭게 수록했다. 다만 저자의 열정이 과도했던 탓인지 지나치게 많은 항목을 한 권의 책에 담은 결과, 개별 항목들의 정보가 독자의 욕심만큼 충실하지 않다는 점은 아쉽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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