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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곪은 성역, 교수사회] <2> 본업은 뒷전, 스펙에 목매는 교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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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곪은 성역, 교수사회] <2> 본업은 뒷전, 스펙에 목매는 교수들

입력
2011.03.04 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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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수님, 어제도 휴강했잖아요" 이름만 학교에 마음은 '콩밭에'

정부 산하 위원회에서 여러 차례 위원장을 맡았던 서울 사립대 A 교수. 해당 분야 전문가에다 활발한 대외활동으로 명망을 얻어 장관까지 지낸 유명 교수다. 그렇다면 본업에서는 어떨까. 이 대학 대학원 재학생 B(27)씨는 "A 교수가 맡은 2개의 전공강좌는 이름만 다르지 교재나 수업내용이 똑같다"며 "수업 준비를 하지 않아 그런 게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B씨는 "바깥 일이 바빠서인지 휴강을 밥 먹듯 하지만 보강수업은 전혀 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여러 전공학회의 회장을 지냈고 기업 사외이사 직도 여러 개 맡고 있는 국립대 C 교수. 이 대학 대학원 졸업생 D(28)씨는 "C 교수는 보통 한 학기에 대학원 강좌 2개와 논문지도 수업을 맡고 있지만, 논문지도 수업은 들어오지도 않고 강좌 2개 중 하나는 조교가 대신 하도록 한다. 단 한 번도 수업을 하지 않은 적도 있다"고 증언했다. C 교수를 지도교수로 하는 학생들만 이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했다니, 수업을 안 해도 뒷말도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안에선 새는 바가지 밖에선 화려

바깥에서의 화려함에 가려진 유명 대학교수들의 이면이다. 이름을 얻는 데 급급해서 제자 가르치는 일은 뒷전이었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제자 상습폭행 의혹을 받았던 김인혜 서울대 성악과 교수에 대해 파면 의결이 내려진 것도 직무태만이 큰 이유였다. 오페라, 방송 출연 등으로 지도 학생의 개인 레슨을 16회 중 1~2회밖에 하지 않아 학사규정을 위반했기 때문이다.

공자는 훌륭한 제자를 기르는 걸 인생 삼락(三樂)의 하나로 꼽았지만 그야말로 그걸 '공자님 말씀'으로 치부하는 교수가 늘어나고 있는 게 문제다. 2010년 기준 상장법인의 사외이사 5명 중 1명(22.4%)이 교수였고, 16대 국회까지만 해도 한 자리 수에 불과하던 폴리페서(국회의원과 교수직을 겸직하는 정치인)는 17대 국회 27명, 18대 국회 19명으로 늘어났다. 학교에서도 본연의 연구ㆍ교육보다는 재정 집행이나 각종 결정권을 가진 보직교수 직에 매달리는 교수들도 상당하다.

꼭 대외활동 때문이 아니더라도 학문 전수에서 자질이 부족하거나 의심스러운 교수가 많다는 것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독실한 기독교인인 경영학과 교수는 경영 이론보다 성경 이야기를 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쓴다. 최고경영자(CEO) 특강 때도 줄곧 종교 얘기만 들었다."(K대 경영학과 재학생) "나이가 많긴 하지만 명색이 영어통번역학과 교수인데 학생들이 영어로 질문을 하면 알아듣지 못하고 '사오정'식 대답을 하는 경우가 많다."(D대 영어통번역학과 재학생) "학생들이 조를 짜서 발표를 하면 교수는 간단히 코멘트만 하는 수업이 한 학기 내내 이어진다. 학생이 학생을 가르치는 격이다."(E대 사회복지전문대학원 재학생) "중국어 수업을 하는 한 교수는 자신이 쓰는 논문의 맞춤법을 체크해 오는 것을 매일 숙제로 내줬다."(S대 중어중문학과 이중전공생)

K대 미디어학부 재학생 E(26)씨는 "강사는 신분이 보장되지 않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강의 자료를 꼼꼼히 챙겨주고 수업도 굉장히 열정적으로 하는 반면 교수들의 수업은 매년 똑같은 패턴이 반복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고려대 학내 신문인 고대신문이 2007년 1학기부터 2009년 1학기까지 강의평가 결과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총 10개 문항 모두 전임강사의 강의 평가가 교수보다 높게 나왔을 정도다.

강의평가제도 유명무실

이처럼 '스펙'을 추구하는 교수들이나 '자질 미달'의 교수들이 학생 지도에 하자가 있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은 사실상 그들에 대한 제재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교수를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강의평가는 실제로는 유명무실하다. 일부 대학들이 강의평가 점수가 높은 교수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거나, 한 대학에서는 강의평가가 낮게 나온 교수에게 강의개선 수업을 듣도록까지 하고 있지만 교수라는 그들의 공고한 지위에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수도권의 한 사립대에서 디지털 관련 학문을 가르치는 한 교수는 수업 교재에 붙어있는 요약본을 인쇄한 뒤 학생들에게 나눠주고 수업시간 내내 그걸 그대로 읽기만 하고 실습은 모두 조교가 진행하도록 해 학생들의 원성이 자자하다. 이 학과 재학생 F(24)씨는 "지난해 아무도 이 교수를 졸업논문 지도교수로 선택하지 않을 정도로 학생들 사이에 문제교수로 찍혀 있다"며 "강의평가에서 매번 부실한 수업을 지적하지만 조금도 개선되지 않는다"고 답답해 했다.

대학원생들이 교수들의 전횡을 감추는 데 동원된다. 학부 강의 커리큘럼을 짜는 일부터 과제 및 시험지 채점, 교수가 학교를 비울 때 대신 강의까지 하는 등 교수의 업무 공백을 고스란히 대학원생들이 메운다. 대학원생들 역시 부실한 수업 및 잦은 휴강의 피해자이지만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지도교수의 직무태만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할 수 없다.

대학 강의 같지 않은 수업의 책임을 교수 자질로만 돌릴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서울 사립대의 한 교수는 "본업을 등한시하는 교수도 문제지만 깊이 있는 강의보다 학점 잘 주는 강의만 골라 듣는 학생들도 무능한 교수를 양산하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대학 당국이 논문 편수 등 양적인 성과물로 교수들을 평가하기 시작하면서 학생 지도와 소통에 소홀해진 측면도 있다. 한편으로는 교수평가제 등의 도입으로 자질이 부족한 교수가 과거보다는 많이 줄어든 추세를 들면서 "교수사회 전체가 매도돼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교수도 있었다.

하지만 비싼 등록금에 시달리는 학생들이 이러저러한 이유로 학문 전수를 등한시하는 적지않은 교수들로 인해 큰 피해를 보고 있다. 중앙대 인문대의 한 교수는 "교수로서 연구와 교육을 사명으로 삼고 지도하는 이는 전체 교수 중 20~30%에 불과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보라 기자 rarara@hk.co.kr

■ 학생 몫 연구비 걷어 개인비서·해외관광…

교수 비리의 전형적인 유형 가운데 하나가 연구비 유용이나 횡령이다. 1990년대 후반 두뇌한국21(BK21)사업 등 대형 국책 연구사업이 시작된 후 연구비 횡령ㆍ유용 사건이 무더기로 발생, 정부가 대책을 마련해 왔지만 연구 현장의 대학원생들은 "연구비 유용 행태는 여전하다"고 입을 모은다.

연구비 비리는 대부분 학생들을 이용해 '쌈짓돈'을 챙기는 식이어서 더 문제다. 제자를 '졸(卒)'로 보는 스승의 인식을 드러내는 대목이어서 더 씁쓸하다.

교수들이 가장 흔하게 손대는 것은 학생들의 인건비. 연구 의뢰 기관이 교수에게 학생 인건비까지 모두 지급하는 게 당초 방식이었다. 그런데 교수들이 이를 학생에게 주지 않아 문제가 되자, 의뢰 기관들이 학생 계좌로 인건비를 직접 송금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되자 교수들이 학생 계좌로 입금된 돈을 요구하거나 아예 차명계좌를 만들어 돈을 챙긴다는 게 학생들의 증언이다.

지난달 한 국립대 대학원을 졸업한 A씨는 "지도교수는 학생 통장으로 연구비가 입금되면 이 돈을 연구실의 박사과정 학생 이름으로 만든 계좌에 입금하도록 시켰다"며 "교수가 학생 1인당 얼마씩 배분하는 금액은 항상 학생들이 참여한 연구 프로젝트 수보다 적었다"고 말했다. 2~3건의 연구를 동시에 진행하는 학생이 많았음에도 프로젝트 수에 상관없이 1건의 연구에 해당하는 연구비만 지급했다는 것이다. 외부활동이 매우 잦아 개인비서를 고용하고 있는 모 교수는 학생 인건비가 들어오는 차명계좌의 돈으로 비서 월급을 줬다는 대학원생의 증언도 있다.

지방 국립대 졸업생 B씨는 "지도교수가 대학원생 1명이 참여하는 연구에 학생 2명의 이름을 적어 인건비를 2배로 받거나 기자재 구입 비용을 2~3배 부풀려 청구한 후 남는 돈으로 개인 노트북, 전자 사전 등을 샀다"고 말했다.

특히 교수들 중에서도 돈줄을 쥐고 있는 연구단장은 더 큰 권력을 가진다. 서울 사립대 대학원 졸업생 C씨는 "지도교수가 BK21 단장인 연구팀은 다른 교수 일행과 달리 2박3일의 학회 일정이 끝난 후에도 4~5일 정도 더 해외에 머물며 관광을 했고, 체재비는 연구비에서 나갔다"고 털어놨다.

사정이 이런데도 연구비 감시는 미비한 실정이다. 지방 국립대 졸업생 B씨는 "교수들 사이에 회계 관련 문제가 생기더라도 서로 묵인하고, 학교에서도 사업단에 대해서는 감사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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