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결승전인데도 관중이 너무 적어 썰렁했어요. 솔직히 시합하는 기분도 안 들고…저는 막 신이 나야 경기를 잘 풀어가는 스타일인데… 많이 아쉬웠죠."
지난달 말 제주 서귀포에서 열린 한국테니스선수권에서 역대 최연소(16세) 여자단식 4강에 오른 최지희는 대회가 끝난 지 열흘이 지났지만 아직도 분이 덜 풀린 듯 했다. 당시 1,2세트 모두 상대의 게임을 브레이크 하면서 앞서 나갔지만 역전패하고 말았던 것. 2일 오후 중앙여고 테니스코트에서 만난 최지희는 "환호하는 사람도 없었고 경기장 분위기가 너무 냉랭해서 집중력이 떨어졌다" 고 말했다.
여고 1년생 최지희(중앙여고)가 한국여자테니스의 블루칩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알렸다. 66년 역사의 한국선수권에서 16세로 4강에 오른 것은 최지희가 처음이다. 최지희는 서울 서빙고 초등학교 4학년때 라켓과 인연을 맺었다. 하지만 그는 사실 엄마뱃속에서부터 테니스를 배운 '골수 테니스인'이다. 아버지(최성훈)와 어머니(임숙자)가 모두 테니스 국가대표 출신으로 자연스레 '테니스 유전자'를 물려받은 것.
키 176cm에 몸무게 65kg으로 여자선수론 다부진 체격을 앞세워 체중을 실은 묵직한 서브가 주무기다. 하지만 최지희의 승부구는 서브에만 그치지 않는다. 서브를 넣고 과감하게 코트를 파고들어 상대의 리턴샷을 차단하는 서브 앤 발리가 그의 장기다.
최지희의 서브 앤 발리를 지켜본 테니스인들은 감탄사를 감추지 못한다. 한국테니스중고연맹 전영식 사무국장은 "서브 앤 발리는 성인선수들도 구사하기를 꺼리는 기술"이라며 "리턴샷을 서서 기다리지 않고 공격적으로 차단하는 습관은 매우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5년째 그를 지도하고 있는 최준철 코치도 "지희의 서브 파워는 또래들보다 훨씬 뛰어날 뿐만 아니라 발리 기술까지 겸하고 있다"며 "배짱이 두둑해 위기를 맞아서도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지희는 그러나 국내최고의 테니스 명문 중앙여중에 입학할 때 만해도 이소라, 장수정 등 또래들보다 한 수 아래로 평가 받았다. 하지만 양주식 감독의 지도를 받으면서 그의 숨은 재능이 보석처럼 빛나기 시작했다. 중앙여중 2학년이던 2008년 한국선수권 여자단식에서 대학과 실업 언니들을 차례로 꺾고 본선에 진출, 자신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최지희는 이어 김천국제주니어대회와 국내 주니어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장호배 대회를 잇달아 석권했다.
양 감독은 "상대의 수를 미리 읽고 있는 지희를 당해낼 성인 선수들이 많지 않다"며 지희의 기량이 일취월장한 원인으로 탁월한 예측력을 꼽았다. 양감독은 또 "지희가 관중이 많은 것을 부담스러워 하지 않고 되레 즐기는 스타일"이라며 "큰 무대에서 강한 승부사기질을 갖추고 있다"고 평했다.
최지희는 올해 목표로 8월 US오픈 주니어 대회 본선진출을 삼았다. 그는 이를 위해 3월 한 달여간 태국, 필리핀, 말레이시아, 일본 등을 오가며 주니어와 시니어대회에 출전해 점수를 쌓은 후 랭킹을 현재 247위에서 50위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올 시즌 국가대표 후보에 이름을 올린 최지희는 대한테니스연맹과 한솔테니스 장학생으로도 선정되는 겹 경사를 누렸다. 최지희의 우상은 지난 1월 호주오픈에서 아시아인으론 처음으로 여자단식 결승에 오른 중국 테니스 스타 리나(랭킹7위)다. "리나 언니를 보면 미래의 내 모습이 그려진다"는 그는 리나처럼 반드시 그랜드슬램대회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겠다는 각오를 밝히며 3일 태국 주니어 1급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방콕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글ㆍ사진=최형철 기자 hc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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