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연합(EU)이 리비아에 대한 무력 개입을 준비하는 모양이다. 카다피 친위세력의 버팀목인 공군력을 무력화하기 위해 비행금지구역(No-fly Zone)을 설정하는 것이 핵심이다. 아직은 유엔 안보리 결의가 뒷받침되지 않은 무력 개입은 법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어렵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그러나 과거에도 시작은 대개 그랬다. 어떤 형태의 분쟁이든 무력 개입을 꾀하는 외세는 언뜻 진지한 논쟁으로 명분을 쌓는 동시에 군사적 준비를 한다. 이어 국제 언론이 앞장선'개입 촉구'여론을 발판으로 행동에 나선다.
■ 1차 걸프전 뒤인 1992년 미국 영국 프랑스는 이라크 북부에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했다. 걸프전 와중에 반기를 든 쿠르드 지역을 공격하는 것을 막는다는 명분이었다. 미국 등은 안보리 결의 688호를 내세웠다. 1991년 4월의 이 결의안은 쿠르드 족을 비롯한 국민을 탄압하는 것을 비난하고 인권 존중을 촉구하는 내용이다. 당시 유엔 사무총장 부트로스 갈리는 결의안 688호를 근거로 무력을 사용하는 것은 불법(illegal)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미국 등은 후세인의 악행을 막기 위한 정당한(legitimate) 조치라고 강변했고, 국제 언론도 대체로 영합했다.
■ 1999년 미국과 나토(NATO)의 코소보 공습도 안보리 결의 없이 감행됐다. 명분은'긴급한 인도적 위기'였다. 코소보 내전에서 세르비아계와 유고슬라비아 군이 알바니아인들을 마구 학살한다는 증언과 보도가 잇따랐다. 클린턴 정부는 알바니아인 10만 명 이상이 실종됐다고 위기를 부풀렸고, 언론은 이를 그대로 전파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미국과 나토는 전투기 1,000여대와 함정, 잠수함 등을 동원해 3개월 가까이 유고를 공습했다. 전쟁이 끝난 뒤 국제적십자사 등의 집계에 의하면, 공습의 인명 피해는 내전 희생자 수와 얼추 비슷하다.
■ 어쨌든 이라크와 옛 유고에 대한 무력 개입은 악명 높은 독재자들을 제거했다. 리비아 개입도 카다피 독재를 무너뜨려 대량 학살을 막는다는 명분을 앞세운다. 미국과 나토가 마음만 먹으면 정당성 시비나 군사적 장애는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그보다 주목할 것은 외세 개입은 '혁명'의 본질과 향방을 왜곡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과거 오랜 외세 침탈을 겪은 리비아인들은 민주화에 못지 않게 자주 독립을 바란다. 이 때문에 서구 여러 나라는 민중 봉기 전부터 카다피 반대세력을 은밀히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세가 노리는 것은 물론 리비아의 석유다.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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