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를 빛내는 게 스포츠 에이전트의 몫이지만 선수보다 더 유명한 에이전트도 있다. 1980년대부터 야구 한 분야를 파고들어 무수한 대형 계약으로 명성을 드높인 스콧 보라스(59)다.
무릎 부상으로 선수생활을 접고 에이전트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보라스는 1997년부터 5,000만달러(그레그 매덕스), 1억달러(케빈 브라운), 2억달러(알렉스 로드리게스)에 이르는 메이저리그 초대형 계약을 차례로 이끌어내면서 '슈퍼 에이전트'의 대명사로 이름을 굳혔다.
아마와 프로를 넘나들며 무서운 속도로 세력을 확장한 보라스는 자신의 영역을 단지 계약 문제에 국한시키지 않았다. 그는 야구장 안팎에서 '고객'의 운신에 끊임없이 관여하기로도 유명하다. 2009년에는 뉴욕 메츠 중견수 카를로스 벨트란에게 우익수 변신을 권유해 눈길을 끌었는데 메츠의 테리 콜린스 감독은 최근 벨트란의 올시즌 포지션을 우익수로 결정했다.
부와 명예를 보장하는 보라스의 손길은 선수에게는 엄청난 기회지만 구단으로서는 눈엣가시같은 존재다.
등돌리는 우량고객들, 보라스 시대의 종언?
보라스는 2007년 로드리게스(뉴욕 양키스)에게 10년간 2억7,500만달러의 천문학적인 계약을 안겼다. 그러나 기대치가 그보다 높았던 로드리게스는 지난해 9월 보라스와의 계약을 해지했다. 로드리게스는 대신 여자친구인 마돈나의 매니저를 고용했다.
외신에 따르면 마크 테세이라(양키스)도 3일(한국시간) 기자회견을 열어 지난 12년간 함께 해온 보라스를 전격 '해고'했다. 보라스는 2001년 테세이라가 1라운드 지명을 받을 때부터 그를 책임져왔다. 테세이라는 보라스와의 관계를 정리하면서 "나는 야구선수 테세이라이고 싶다. 보라스의 고객으로 불리고 싶지 않다"면서 "양키스의 우승에만 전념하고 싶다"고 말했다.
보라스는 신인 시절의 테세이라에게 4년 950만달러의 파격 계약을 성사시킨 데 이어 2008년에는 테세이라와 양키스간 8년 1억8,000만달러의 매머드 계약을 따냈다. 그러나 테세이라의 이날 발언으로 미루어볼 때 그는 보라스의 집요한 관리에 염증을 느껴왔던 것으로 보인다.
초우량고객인 로드리게스와 테세이라를 잃으면서 보라스의 입지도 좁아지는 분위기다. 이미 2008시즌 후 테세이라의 계약을 발표할 때부터 업계에서는 당연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테세이라의 이름값이라면 보라스가 아니었어도 충분히 가능한 계약이었다는 것. 또 경제 불황의 기나긴 늪 속에서도 고자세로 일관하는 보라스는 각 구단의 따가운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형편이다.
신규고객 추신수의 미래는?
보라스는 한국선수들에게도 익숙한 이름이다. 과거 박찬호(오릭스)에게 5년간 6,500만달러의 잭팟을 안겼고 김병현(라쿠텐), 김선우(두산) 등도 도왔다. 지난해 2월에는 추신수(29ㆍ클리블랜드 인디언스)가 보라스의 새 고객이 됐다.
메이저리그 최고 블루칩 중 한 명인 추신수는 올해 초 클리블랜드와 1년 397만5,000달러에 재계약했다. 구단으로부터 5년간 4,500만달러라는 달콤한 제안을 받았으나 거절했다. 보라스는 추신수의 가치가 갈수록 오를 것이라고 내다보고 장기계약을 말렸다. 우승 가능한 팀으로의 이적을 원하는 추신수의 의지와도 맞아떨어졌다.
2013시즌 후 추신수는 자유계약선수(FA)로 풀린다. 2년 연속 타율 3할, 20홈런-20도루의 상승세를 유지한다면 향후 적어도 1년에 1,000만달러 이상은 이끌어낼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광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병역 부담도 떨쳐낸 추신수다.
보라스는 추신수에게 장담한 대박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슈퍼스타와의 잇따른 결별 속에 보라스의 위기가 도드라져 보이고는 있지만 그의 영향력은 여전하리라는 분석도 있다. 테세이라와의 결별은 예정된 수순이었고 보라스의 타깃은 화수분처럼 넘쳐난다는 것이다. 보라스는 지난달 스물아홉의 전도유망한 로빈슨 카노(양키스)와 에이전트 계약에 합의했다. 그의 고객은 아직도 메이저리그에만 60여명에 이른다.
양준호기자 pir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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