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식량 지원에 인색하던 이명박 정부의 방침이 바뀌는 것일까. 정부가 대북 인도적 지원 문제를 본격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그 동안 중단됐던 대북 식량 지원에 물꼬가 트일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90년대 이후 지금까지 우리 정부가 북한에 지원한 식량은 쌀 265만톤, 옥수수 20만톤 등 총 1조976억원어치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쌀 250만톤과 옥수수 20만톤 등 대부분이 지원됐다. 2000~2007년까지 8년 동안 두 정부를 거치면서 매년 40만~50만톤을 차관이나 무상원조 형식으로 북한에 보냈다. 북한의 연간 식량 수요량은 540만톤인데 자체 생산량은 440만톤에 불과해 매년 100만톤 정도가 부족하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결국 두 정부에서 지원한 식량은 북한 식량 부족량의 절반 가량을 채워준 셈이다.
이에 반해 현 정부는 대북 식량지원을 외교안보 전략 차원에서 다루면서 지난 3년간 식량 지원을 중단했다. 대북포용정책의 핵심 전략으로 대북 식량 지원 카드를 사용했던 김대중 노무현 정부와는 달리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을 보여야만 식량 지원을 할 수 있다는 게 주요 이유였다.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 사망 사고에 이어 지난해 북한이 천안함 폭침ㆍ연평도 포격 도발을 감행하면서 남북관계가 경색된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미국도 2008년 부시 정부 당시 50만톤의 쌀을 북한에 지원하기로 약속하고 17만톤을 지원했으나 분배투명성 문제로 갈등이 빚어지면서 2009년 3월 지원을 중단했다.
지난해 9월에는 여권을 중심으로 북한이 100만톤 이상에 달하는 군량미를 비축하고 있다는 주장까지 제기돼 북한에 대한 지원은 더욱 어려운 상황이 됐다. 당시 북한이 수해 피해를 당하자 인도적인 차원에서 식량 지원을 해야 한다는 여론이 잠깐 일었지만 ‘군량미 비축론’에 묻혔다.
이런 흐름을 고려하면 최근 정부의 대북 식량지원에 대한 언급에서 미묘한 기류 변화가 감지된다. 한 대북 전문가는 “북한의 식량 상황을 두고 이견은 있지만, 북한 주민들이 상당한 식량난에 처해 있는 것으로 판단해 서서히 지원쪽으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식량 배급체계가 사실상 붕괴되고, 최근 3년간 국제사회로부터 식량 지원이 끊기면서 재고가 바닥을 보이자 북한이 미국 등 국제사회에 식량 지원을 호소하고 나선 것도 정책 변화의 한 요인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우리 정부와 미국은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과 책임있는 행동을 보여야만 식량 지원에 나설 수 있다는 입장이어서 실제 지원까지는 짧지 않은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유인호기자 yi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