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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 칼럼] 사회의 첫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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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 칼럼] 사회의 첫발

입력
2011.03.03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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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 딸이 대학졸업반이 되면서 모 광고회사에서 인턴 생활을 시작했다. 광고 쪽 일을 해보겠다고 편입까지 해서 학교와 학과를 옮긴 아이다. 그러니 직장에 대한 꿈이 클 수 밖에 없을 것이고, 인턴이든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일을 배우겠다 여기는 마음도 야무질 터이다.

이 아이가 밤마다 12시가 가까워 퇴근을 한다고 지인의 걱정이 컸다. 어디는 안 그렇겠는가 만은, 광고회사라는 데가 일이 많은 곳이라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어 그러려니 했다. 얼마 전 그 아이를 만날 기회가 있어 기특한 마음으로 아이를 한참 바라봤다. 부모 품 벗어나 고된 세상으로 나가는 게 아직 무엇인지도 다 알지 못할 나이겠으나, 그런 고됨을 알려주기보다 격려하는 말을 더 많이 해주고 싶었다.

대학생 인턴 월급 80만원

그런데 이 아이가 받는 인턴 월급이 80만원이란다. 그야말로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매일 출퇴근에 꼬박꼬박 야근까지 하는데 80만원이라니. 아이가 먼저 내게 말하기를, 아르바이트 시급 계산에도 못 미치는 월급이라고 한다. 또 한번 놀랐는데, 아르바이트 시급이 얼마 정도인지를 몰라서가 아니라, 아이가 이런 식으로 고된 세상의 맛을 벌써부터 보고 있구나 싶어서였다. 고되기만 하겠는가. 부당하기가 이루 말할 데 없다. 더도 덜도 말할 필요 없이 노동 착취다.

아이가 하는 일이 복사에 하잘것없는 심부름에 그저 인력동원에 지나지 않는다면 고급인력 데려다가 그렇게 써먹으니 노동 착취다. 그렇지 않고 꼬박꼬박 일 가르쳐주고 반드시 쓸 데다가 쓰고 있다 해도, 그렇게 일한 아이에게 그만한 보수 해주지 않으니 역시 노동착취다. 어디 정직원에 해당하는 보수를 바라는 불평이겠는가. 사람을 쓸 데 쓰면 쓰는 만큼 대우를 해주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오늘 용달을 쓸 일이 있어서 기사분과 차 안에서 한동안 얘기를 했다. 용달 일을 하다 보니 원룸 이사를 많이 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젊은 친구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고 했다. 지하철녀니 무엇이니 뉴스에서 기막힌 젊은이들의 가십 기사가 아무리 나와도 본인이 만난 젊은 친구들은 하나같이 참 예의 바르고 건전하더라고 했다. 나도 그렇다고 대답했다. 내가 만난 대부분의 젊은 친구들이 참 성실하고 야무진데 예의 바르기까지 하더라고.

얼마 전 기사에서 캥거루 족이 늘고 있다는 보도를 봤다. 부모가 용돈 넉넉히 주니 좋은 직장 나설 때까지 자발적 실업을 유지하고 있는 젊은 층을 캥거루 족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런 젊은 층의 증가 때문에 청년실업률이 숫자상으로 늘고 있다고도 한다. 물론 형편만 된다면 자식 고생시키기 싫은 부모 마음 이해되고, 기왕에 시작하는 사회생활의 첫 단추를 좋은 곳에서부터 끼우고 싶은 젊은 친구들의 마음도 이해되기는 한다.

그러나 그들이 부모 그늘 아래에 있는 한, 그들은 영원히 성장이 유예된 미성숙한 존재들일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더 많이 절실하게 이해해야 하는 것은, 충분히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기회를 얻지 못하는 친구들의 마음이며, 그런 사회구조에 악용 당하면서도 견뎌야 하는 마음들이다.

성실한 젊은이 부당한 대우

사회는 어떻게 건전해지고, 어떻게 타락하는가. 건전한 사람들이 건전한 사회를 만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건전하지 못한 사회는 건전한 사람들을 음지로 몰아넣는다. 세상의 고된 맛을 다 알지 못해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그것이 세상으로 나아가는 성실한 자세라고 생각하는 젊은 친구들에게, 나이 든 나는 미안하다. 세상에 대해 기여한 바가 별로 없어 그렇고, 그러면서도 여전히 그 세상에 등 기대고 살고 있으니 그렇다.

그래서 고작 이렇게 불평 같은 원고나 쓰고 있는데, 이 글 읽는 사람들 코웃음 치며 세상 다 그런 거 이제 와서 알았나,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또 부끄럽다.

김인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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