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더 이상 '개천에서 용 나오기'를 기대하기 어려운 사회가 되었다. 부모의 재력이 뒷받침되어야 1류 대학에 갈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대학 입시뿐만 아니라 취업 준비에서도'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된다.
취업 준비도 '빈익빈 부익부'
첫째, 집안 형편이 어려워 대학 학자금 부담이 큰 학생들은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 부모님의 능력으로는 감당하기 부족한 학자금을 벌기 위해서, 혹은 용돈이나 자취 비용까지 부모님께 손 벌리기 어렵기 때문에 공부 대신 일을 하는 것이다. 어떤 학생들은 등록금 걱정 없이 스펙 쌓기에 매진하고, 다른 누구는 돈 버느라 학점 따기 위해 수업 들어가는 것에 급급하다면 누가 취직 경쟁에서 이길 것인가는 답이 뻔하다.
둘째, 학생들 말을 들어보면 취업 준비에서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존재한다고 한다. 영어권 국가에 어학 연수라도 다녀온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 간에 취업 성공 확률은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고 한다. 또한 자격증 따기, 토익 성적 올리기도 그냥 열심히 한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학원을 꾸준히 다닐 수 있는 학생과 그러한 경제적 여유가 없는 학생과는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대학 사회의 공정경쟁을 위해 기업과 국가가 무언가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 같다. 먼저 기업에게 부탁하고 싶다. 스펙을 중시하는 채용 관행에서 탈피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론 우수한 인재를 뽑으려는 기업의 의도를 모르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스펙 좋은 학생과 우수한 인재 사이에 등식이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로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토익 성적은 다소 뒤져도 어렵게 공부한 학생들이 취직하면 조직에 더 충성하고 맡은 일에 더 전념할 수 있다. 기업도 이미 이러한 사실을 알기 시작했을 것으로 믿는다. 인턴 제도를 통해 채용하는 숫자를 늘리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인 것으로 안다. 하지만 인턴을 뽑을 때 또 스펙을 합격 기준으로 한다면 스펙 전쟁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국가가 할 일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대학 학자금을 국가가 보조하기 위해 '(가칭)국가장학기금'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저소득층 대학생에 대해 학자금 일부와 기본 교재비 등을 보조하여, 돈이 없어도 학업과 취업 준비에 전념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어야 한다. 지금의 학자금 대출 제도에서 대출 규모를 다소 줄이고 직접적으로 학자금 일부를 보조하는 제도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또 지급 조건에서 성적 보다는 필요(need)를 우선시 하는 원칙이 지켜져야 의미가 있다.
둘째, 취업 준비를 위한 교육비용을 지원하기 위해 대학생들에게도 '(가칭)직업능력개발구좌제'를 실시하는 정책을 적극 검토해 보자. 저소득층 대학생 개인별로 예금계좌를 개설해 주고 그 돈으로 자격증 취득 등 취업 준비를 위한 교육비용에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소득 수준별로 금액을 달리하여 지원하는 방법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지금 노동부가 비정규직 등 취약 근로계층에 대해 시행하고 있는 프로그램을 대학생들에게까지 확대하자는 말이다.
부모의 재력 경쟁 탈피를
현 정부는 공정사회를 말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대학 사회의 스펙 경쟁은 학생들간의 공정 경쟁이라기보다 부모의 재력 경쟁이다. 미국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선출된 날, 그 뉴스를 전하던 어느 지상파 방송 뉴스 앵커가 클로징 멘트로 한 말이 기억난다. 오바마의 당선은 "홀어머니에 외할머니가 어렵게 키운 흑인 학생이 콜럼비아 대학교,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할 수 있게 기회를 준 나라, 그러한 미국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종훈 명지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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