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 2년전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대회현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쏟아지는 폭우에 선수들은 비옷을 꺼내 입었지만 신지애 선수는 끝까지 사양했다. 비옷을 입으면 상의에 새겨진 스폰서 로고가 가려져 TV나 사진, 갤러리 등에 노출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신지애의 스폰서는 미래에셋그룹. 한 골프관계자는 “자신에게 거액을 후원하는 스폰서에게 저 정도 예의는 갖춰야 한다. 자기 옷이 비에 흠뻑 젖더라도 스폰서 로고는 가리지 않게 하겠다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프로선수의 자세”라고 말했다.
# 지난해 가을 신한금융그룹은 만신창이였다. 최고경영자들끼리 서로 고소하고 헐뜯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았고, 신한의 이미지는 걷잡을 수 없이 추락했다. 하지만 그런 신한에 모처럼 힘 나는 소식이 들려왔다. 신한이 후원하던 프로골퍼 김경태선수가 한국선수로는 최초로 일본 남자프로골프투어에서 상금왕에 오른 것. 신한의 한 관계자는 “투어 마지막 대회가 끝난 뒤 일본 선수들이 ‘SHINHAN’글자가 새겨진 모자를 쓴 김경태를 헹가래치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모처럼 웃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금 금융권은 골프에 푹 빠져 있다. 주요 금융회사들이 유명 프로골퍼, 그 중에서도 여자프로골퍼들과 앞다퉈 스폰서계약을 맺고 있는 것. 금융권의 스포츠경쟁이 농구코트(여자프로농구)에 이어 필드 위로도 확대되는 양상이다.
KB금융그룹은 2일 미국여자프로골프(LPGA)에서 활약 중인 주부골퍼 한희원과 유망주 양희영, 그리고 국내 투어(KLPGA)에서 활약중인 정재은과 후원계약을 맺었다. 하나금융그룹은 일찌감치 국내에서 개최되는 유일의 LPGA대회인 하나은행챔피온십을 개최해오고 있으며, LPGA ‘위너스클럽멤버(우승경험자)’인 김인경 선수 등 4명을 후원하고 있다.
신한금융그룹은 드물게 남자선수들만 후원하고 있다. 김경태선수와 올해 미 프로골프(PGA) 정규투어 진출에 성공한 강성훈 선수를 후원중이다.
우리금융그룹이 4대 금융그룹 가운데 유일하게 후원선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 영업정지된 삼화저축은행을 인수하면서, 삼화가 운영해왔던 골프단도 함께 인수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기업은행은 오래 전부터 LPGA투어의 장정 선수를 후원중이다.
제2금융권에도 골프단 운영은 이미 대세가 되었다. 가장 주목받는 곳은 신지애를 후원하는 미래에셋그룹. 미래에셋은 지난해 LPGA 최장타자인 브리타니 린시컴까지 영입, 국내 금융사로는 유일하게 외국선수와 스폰서십 계약을 맺는 기록까지 세우게 됐다.
이 밖에도 보험사, 증권사, 저축은행, 카드사 등 많은 금융사들이 대회를 개최하거나, 골프단 운영 혹은 선수 후원계약을 진행하고 있다. 저축은행권이 가장 활발한 편인데, 토마토저축은행과 현대스위스저축은행 등이 10여명 이상의 선수들로 구성된 매머드급 골프단을 운영중이다.
이처럼 금융회사들이 골프에 몰입하는 이유는 비용대비 효과가 다른 어떤 스포츠보다 크기 때문. 한 은행관계자는 “야구나 축구는 인기스포츠이지만 선수들 연봉 외에도 차량과 숙소운영 등 구단 유지비가 많이 들어간다. 더구나 단체운동이라 선수관리도 힘들다. 반면 골프는 개인경기이기 때문에 관리도 쉽고 추가 비용이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엔 골프를 중계하는 채널들이 많아져, 광고노출효과가 매우 높다는 분석이다.
‘큰손 고객’관리에도 골프는 어떤 종목보다 매력적이란 평가. 금융사들은 VIP고객을 프로선수들과 매치시켜 게임을 진행하는 ‘프로암’행사를 자주 개최하곤 한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프로암행사에 초청했던 거액 예금자들의 예금액을 다 합쳐보니 (법인예금을 포함해) 3조원이 넘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은행관계자는 “KB까지 가세함에 따라 이젠 어느 금융그룹 소속 선수들이 먼저 또 많이 우승을 하느냐를 놓고 자존심 경쟁을 하게됐다”고 말했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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