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기고/ 대외 정보활동과 국익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기고/ 대외 정보활동과 국익

입력
2011.03.03 12:02
0 0

북한이 최초로 인공위성을 발사했을 때의 일이다. 로켓 추진력이 부족해 정상 궤도에 이르지 못하고 도중에 추락했다. 당시 미 의회는 북한이 쏜 것이 평화적 연구 목적의 인공위성인지 아니면 장거리 미사일인지 궁금했다. 사실 미사일과 인공위성은 이를테면 종이 한 장 차이로, 탄두에 뭐가 장착됐는지에 달렸다. 폭탄을 달면 미사일이고 위성을 달면 인공위성이다.

언론이 미사일이랬다 인공위성이랬다 엇갈린 보도를 하는 가운데 의회는 정보 당국의 보고를 직접 듣기로 했다. 민감한 사안을 다루는 회의장 문을 걸어 잠그고 바깥에는 해병 위병들이 지키는 비공개로 진행됐다. 나도 참석한 정보보고 회의에서 의원들이 들은 얘기는 언론은 물론 자기 부인에게도 영원히 말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다.

당시 회의는 정보 당국이 왜 처음에는 미사일이라고 했다가 인공위성으로 판단했는지에 초점이 맞춰졌다. 정보 당국의 설명은 간단했고 만족스러웠다. 그들도 사람인 이상 판단에 실수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여야 의원 모두 이에 대해 함구했다. 북한과 같은 폐쇄적 나라를 상대로 하는 대외 정보 활동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정보기관의 고유한 특수성을 존중하는 것이다.

미 의회의 이런 확고한 관행은 한국의 현실과는 대조적이다. 얼마 전, 국정원 요원이 인도네시아 특사단이 묵고 있는 호텔에 잠입해 정보를 빼내려다 발각된 사건이 있었다고 한 신문이 보도하자, 모든 언론이 며칠을 두고 대대적으로 다루었다. 심지어 어떻게 침투하고 발각됐는지 자세히 그림까지 그려가며 친절하게 설명했다. 그리고 정보기관원들이 아마추어보다 못하다느니, 동네 아줌마나 택시기사조차 "차라리 우리가 나섰더라면 성공했을 것"이라고 말한다는 등의 모욕적 보도를 쏟아 냈다.

이야기는 꼬리를 물어, 사건을 경찰에 신고한 사람이 국방부 소속 대령이며 국정원과 국방부의 해묵은 갈등이 원인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국정원이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 때 정보를 국방부와 공유하지 않아 생긴 불신의 결과라고도 했다. 대한민국의 최고 정보기관을 나라 안팎의 조롱거리로 만들기 위해 앞다퉈 애쓰는 듯한 모습이었다. 오죽하면 인도네시아 국방부가 "한국 정보요원들이 특사단 숙소에 잠입했다는 한국 언론의 보도는 선정주의이며, 특사단이 들고 간 자료에 고급 군사기밀은 없다"고 했겠는가.

이번 사건에서 언론과 일반이 오해하는 것에 대해서도 정보 당국이 국익 보호 차원에서 차마 밝히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고 믿는다. 은밀한 활동이 생명인 국가 정보기관을 온통 불신하고 대외 정보활동을 세세히 밝히라고 윽박지르는 것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일이다. 미국의 경우, 최근 이집트 사태에서 CIA(중앙정보국)는 그릇된 상황 판단과 예측을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의회와 오바마 대통령은 가볍게 짚고 넘어갔다. 언론도 다르지 않았다. 정보 활동의 특수성을 존중하고, 특히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정보 활동까지 헤아려 섣부른 비판을 자제하는 것이다.

대외 정보활동은 정보요원 본인은 물론이고 때로는 가족의 위험까지 무릅쓰는 애국적 헌신을 바탕으로 한다. 국익과 국민 기본권을 해치는 정보기관의 일탈은 정부와 의회가 잘 감독해야겠지만, 막연한 의혹이나 사소한 실수를 빌미로 국가정보기관과 요원들을 함부로 비방하고 모욕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이익을 스스로 해치는 어리석은 일이다. 여야 가림 없이 정보기관과 정보활동의 중요성을 지혜롭게 살피기 바란다.

김창준 전 미국 연방하원의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