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초대 관장(재임 1945~70)이자 김영나 현 관장의 선친인 김재원(1909~90) 박사가 일제의 내선일체론에 동조해 쓴 글이 공개돼 친일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3ㆍ1절을 맞아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이 공개한 이 글은 일제강점기 잡지 '조광' 1943년 10월호에 실린 '예술과 감상'이라는 제목의 수필로 자신을 일본인으로, 한국 문화를 일본 문화로 칭하면서 일본인으로서 일본 문화에 관심을 갖자고 촉구하는 내용이다.
이 글에서 그는 유학 시절 은사인 벨기에 학자가 한국 불상 사진을 보여줬을 때 그 가치를 몰라 엉뚱한 말을 했던 일화를 소개하면서 "일본 민족의 한 사람으로 태어난 소위 지식 계급에 있는 사람이 일본인이 만들어 낸 일본 예술품을 감상할 수 없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63쪽)이라고 썼다. 또 동양인이 서양 문화에 심취해 정작 동양예술에는 무관심하니 학교에서 동양예술사를 가르치자고 제안하면서 이는 "동양정신, 이어서는 일본 정신을 아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66쪽)이라고 했다.
황 소장은 "전체 논조로 볼 때 이 글은 일제의 대동아공영권과 내선일체론을 전제로 씌어진 것"이라며 "초대 중앙박물관장으로서 그의 공적만 부각시킬 게 아니라 과오도 냉철히 밝혀 재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수필은 미술사학자 이태호 명지대 교수가 1995년 (학고재 발행)에 발표한 '1940년대 친일 미술의 군국주의적 경향'이란 논문에서 운보 김기창 등 다른 인사들의 친일 행적과 함께 간략히 언급한 적이 있다.
김재원 박사는 해방 후 25년간 국립중앙박물관장으로 일하면서 박물관의 기틀을 세웠고, 해방공간과 6ㆍ25전쟁의 혼란기에 우리 문화재를 지키는 데 이바지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그가 친일을 했으며 미군정 시절 문화재 유출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해 왔다.
김영나 관장은 지난달 14일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선친의 친일 논란에 관한 질문을 받자 "당시 선친은 오랜 독일 유학에서 돌아와 보성전문에서 독일어를 가르치는 강사였기 때문에 친일 논란을 일으킬 위치에 있지 않았다"고 말했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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