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1월 엄동설한에 울산 부두에서 엑셀 1,050대가 차례로 대형 선박에 선적됐다. 현대차가 자동차의 본고장인 미국에 처음으로 완성차 수출에 나선 것. 한달 뒤 플로리다주 잭슨빌 항에서 하역된 4,995달러짜리(당시 환율로 약 550만원) 엑셀은 미국 전역에서 본격적으로 팔리기 시작했다. 세계 자동차 업계는 현대차의 저돌적인 미국시장 공략을 무모하다고 평가절하했지만, 엑셀은 첫해 16만대가 팔리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누구도 이 회사가 미국에서 25년 만에 1,000만대를 판매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당시만 해도 ‘오토바이보다도 싼 차’라는 비아냥을 들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현대·기아차가 미국 시장에서 누적판매 1,000만대 돌파의 금자탑을 쌓아 올렸다. 해외 단일 시장으로는 최다 판매다.
현대·기아차는 2일 현대차 및 기아차의 미국법인이 지난달 미국 시장에서 각각 4만 3,533대, 3만2,806대를 판매해 미국 진출 25년 만에 누적판매 1,001만 5,725대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현대차의 미국 시장 진출사는 한국 경제 발전의 축소판이다. 기술력 부족으로 단순 조립에서부터 시작했다. 하지만 정부의 강력한 수출 드라이브 정책과 열성적인 근로자, 강력한 오너십이 놀랄만한 시너지 효과를 냈고, 이제는 미국 빅3는 물론 도요타 등 일본 업체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세계 5대 자동차 강국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 과정은 시련과 도전의 연속이었다. 처녀 수출한 엑셀은 한때 국내외 경영학에서 해외 진출의 실패사례로 학생들에게 소개되기도 했다. 품질이 뒷받침되지 않은 상황에서 해외 판매에만 집중했다가 싸구려 브랜드 이미지가 고착돼 더 큰 비용을 지불하게 된 것. 실제로 현대차 엑셀은 미국 수출 첫해 16만여대, 이듬해인 1987년 26만여대가 팔리며 소형차 부문에서 도요타, 혼다, 닛산을 누르며 신화가 되는 듯 했다. 하지만 낮은 품질과 미처 갖추지 못한 서비스망으로 현대차는 싸구려라는 딱지가 붙었다. 1989년 현대차가 의욕적으로 건설한 캐나다 브루몽 공장이 6년 만에 문을 닫은 것도 이 때문이다. 1998년에는 미국 판매량이 10만대 아래로 떨어지는 위기를 맞기도 했다.
이때 새로운 전기가 마련됐다. 1998년 기아차를 인수하고 1999년 정몽구 회장이 취임한 것. 정 회장이 초지일관 품질을 경영의 화두로 내세우고, 기아차까지 더하면서 미국 판매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2002년 ‘10년, 10만 마일 보증’의 마케팅 전략은 이미지 변신을 이뤄낸 획기적인 전환점이었다. 그 결과 2000년 280만여 대 누적판매에서 5년 만에 604만대를 돌파하고 지난해엔 누적판매가 987만여 대를 넘어섰다.
지금까지 미국 시장에서 가장 많이 팔린 차종은 아반테(현지 판매명 엘란트라)로 올 2월까지 154만9,000여대가 판매됐다. 2위는 쏘나타(148만3,000여대), 3위는 엑셀(114만6,000여대).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현대ㆍ기아차가 거둔 성공은 자동차 제조업 특성상 기적에 가깝다”면서도 “정보기술(IT) 융합, 전기차 등 새로운 기술변화에도 적응해야 성장이 지속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송태희기자 bigsmil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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