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님! 요즘 힘드시죠.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도발로 더욱 긴장된 대북 관계, 아프리카ㆍ중동 발 민주화 바람, 유가 등 원자재가 폭등, 여기에 안으로는 과학벨트ㆍ신공항 입지 갈등, 전세난, 물가 불안, 4대강과 구제역 환경 논란, 종교계 하야 발언까지….
답답하실 겁니다. 휴일도 없이 아침 7시에 나와 국사를 챙기고, 점심시간도 아까워 빨리 먹을 수 있는 설렁탕으로 때울 정도로 바쁘게 일한다고 들었는데 이런 일만 터져서.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뜬금 없는 편지를 보내는 것, 이 시대를 사는 한 소시민의 푸념이라 생각하십시오.
지난 주말 가족들과 집 근처 마트에 갔습니다. 쇼핑 카트만 밀다 왔는데 참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집사람 볼 면목이 없었습니다. 마늘 호박 고추 파 같은 채소가격은 눈을 의심하게 만들었습니다. 어릴 적 시장에 따라 가면 어머니는 정육점이나 생선가게에서는 머뭇거리셨지만 채소가게에서만은 당당하셨는데…. 집사람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자연에서 저절로 얻어지는 나물'이라고 해서 '푸성귀'라고 했던 채소가 더 이상 푸성귀가 아니대요. 정육코너는 구제역을 핑계로 아예 근처에도 가지 않았습니다. 나오면서 집사람이 혼잣말로 한마디 하더군요. "지난달에 2,800원 하던 양파 한 망이 3주 만에 4,800원으로 오른 건 너무한 거 아니야"라고.
가장의 추락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신학기 개학을 하루 앞둔 어제(1일) 중학교 3학년이 되는 딸 아이 참고서를 사러 서점에 갔습니다. 이곳에서도 짐꾼 역할을 했습니다. 집사람과 딸이 필요한 참고서를 제 손 위에 올려 놓는데, 10분도 안돼 9권이 쌓였습니다. 지난번에 다 못 산 과목을 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교육 부담을 줄이기 위해 교과목을 줄였다고 들었는데 정작 현장에선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슬쩍 참고서 한 권의 뒷면을 봤습니다. 정가가 1만5,000원 안팎이대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몇 과목은 없어서 못 샀습니다. 이틀 전 마트에서의 집사람 얼굴이 떠올라 계산대에서 먼저 카드 내밀어 결제했습니다. 아마 이런 경험, 저 혼자만 겪은 건 아닐 것입니다. 장바구니 물가, 생각보다 심각합니다.
시골 다녀온 얘기 하나만 더 하겠습니다. 지난달 성묘차 충북 보은을 다녀오다 올갱이국을 잘한다는 한 저자 거리의 국밥집에 들렀습니다. 우연히 식사를 하다 옆 자리 손님들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구제역으로 기르던 소 돼지 몇 마리를 살처분한 농민이었나 봅니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에는 정부의 무능과 정치권을 성토하는 분노로 가득했습니다. 결국에는 '나랏님'탓까지 하대요. 나라가 이처럼 뒤숭숭한 건 다 나랏님 탓이라고.
대통령님, 억울하시죠. 특히 소와 관련해서는 충분히 그럴 만합니다. 취임 초기 광우병 파동으로 촉발된 촛불시위로 눈물까지 흘리셨는데, 3년이 지나 이번에는 구제역이 창궐해 민심을 뒤흔드니 말입니다. 구제역이 터지기 직전 50%대에 달했던 대통령 여론지지도가 최근 30%대 후반으로 곤두박질친 것도 아마 저 같은 가장들과 살처분 축산농가들이 많아져서 그런 것 아닐까요?
아직 임기의 40%가 남아 있으시죠. 더 늦기 전에 마트에 가서 직접 쇼핑 카트 한 번 몰아 보세요. 시간 되시면 시골 저자 거리의 국밥 맛도 보시구요.
송영웅 정책사회부 차장 hero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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