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교육사학자가 쓴 전통시대 교육에 관한 책을 최근 읽었다. 에도(江戶)시대 학자 가이바라 에키겐(貝原益軒ㆍ1630~1714)의 교육철학이 소개되어 있었다. 후쿠오카(福岡)번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 특별한 스승이 없었던 터라 다양하게 공부할 수 있었다. 후일 유학(儒學)으로부터 지리 의학 사전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수백 권의 저술을 남긴 대학자가 되었다.
그는 특히 선생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보잘것없는 기술이나 곡예를 하려 해도 반드시 선생이 필요하다. 배운 후에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물며 광대한 인간의 도리,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은 후에 국가를 다스리는 일에 있어서는 어떠하겠는가.'에키겐은 작은 기술이라도 선생님에게 배우지 않을 수 없으므로 무언가 새로운 것을 공부하려면 반드시 선생님이 필요하다고 언급하였다.
물론 단순히 지식 전달자가 필요하다고 말한 것은 아니었다. 그에게 선생님이란 학생의 모범이었다. 선생님은 지식을 가르쳐 주입하는 존재가 아니라 학생들 앞에서 행동하는 귀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학생이 선생님의 모습을 보면서 감화와 영향을 받으며 스스로 학습해 가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에키겐은 어린아이들의 교육은 더욱 중요하다고 보았다. '어린아이는 지혜가 없으므로 생각이나 말, 행동을 주위 사람에게 배운다. 유모나 옆에서 가르치는 선생이 나쁘면 아이도 잘못된다. 어린아이에게 학문을 가르치고자 한다면 처음부터 인품이 좋은 선생님을 구해야 한다. 학식이 있다 해도 나쁜 선생은 따르게 하지 마라. 나쁜 것을 배우게 되면 오히려 본성을 해치게 된다. 일평생 노력해도 좋은 길로 나아가지 못한다. 한 번 나쁜 짓을 배우게 되면 나중에 좋은 것을 들어도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선생님의 자질만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학생은 스승을 섬길 때 자신의 지위가 높다거나 부유하다고 오만해서는 안 되며 선생님을 존경해야 한다고 에키겐은 말했다. 특히 좋은 선생님을 만나면 편견 없이 겸손하게 가르침을 궁리하며 익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생은 학생의 모범이 될 뿐 지식을 강요하지 않고, 학생은 마음을 비우고 스승의 가르침을 수용하는 관계이다. 이는 협소한 지식만을 우겨 넣는 주입이 아니요 억지로 배우는 수업이 아니다. 가르치지 않으면서도 가르치는 것이요, 마음을 열어두었기에 어떤 생각도 가능하다.
이러한 사제 관계를 마련하는 데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전제가 있다. 바로 학생이 선생님을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책의 저자가 에도시대의 전통 교육법을 소개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대 일본의 학교현장에서 학생이 교사를 선택할 수 없는 현실을 비판하려던 게 궁극적인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선생에게는 잔혹한 평가가 되겠지만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선생님을 선택할 수 있어야 일본의 교육을 새롭게 혁신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오래 전 대학에서 교수평가를 했던 생각이 난다. 선생들은 불만스러워했고 학생들은 스승을 평가할 수 있느냐며 의아해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아직 완전하지 않지만 선생들은 더욱 노력하고 학생들은 수업 선택의 권리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근대 국민교육의 특성상 선생과 학생의 만남이 모든 이를 만족시키기는 어렵다. 더욱이 치열한 입시경쟁에서 학생의 수업권만을 강조했을 때 예상치 못한 결과가 도래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선생님을 선택할 권리를 완전히 무시할 수만은 없다. 모두의 지혜를 모아 점차 그들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도록 모색해야 할 때이다.
김호 경인교대 사회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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