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연수원 42기생들의 2일 연수원 입소식 집단 거부 사태의 배경에는 갈수록 판ㆍ검사 임용의 문이 좁아지고 있는 현실에 대한 절박감이 깔려있다.
연수원 동기생들 간의 임용 경쟁이 이미 치열해진 상황에서 내년부터는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졸업생들까지 경쟁에 뛰어들게 됨에 따라 위기의식이 절정에 달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연수원생 1,000여명이 임용 경쟁을 벌이던 구도였지만 내년부터 로스쿨 졸업생 1,500여명이 시장에 쏟아져 나오면 산술적으로 경쟁률은 2.5배 높아진다.
임용 환경이 악화되면서 연수원생들의 불만이 쌓여가던 중 발표된 법무부의 '로스쿨 졸업생 검사 우선 임용' 방침은 집단행동의 불씨를 당겼다. 법무부는 최근 로스쿨 졸업 예정자 중 학장의 추천을 받아 성적 우수자를 검찰 실무수습과 심층면접을 거쳐 곧바로 검사로 임용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법무부 방안이 현실화될 경우 전국 25개 로스쿨에서 2명씩만 뽑아도 50명이 검사로 임용될 수 있다. 올해 신규 임용된 검사가 90명(군법무관 출신 30명 제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사법연수원 출신 몫은 40명 이하로 줄어들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는 예년의 절반도 안 되는 규모로 연수원생들 간의 경쟁이 훨씬 더 격화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연수원생들은 "법무부의 로스쿨 졸업생 검사 사전 선발 방침은 현대판 음서(蔭敍ㆍ고려, 조선시대에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관직을 했거나 나라에 공을 세웠을 경우 자손을 과거에 의하지 않고 관리로 특별 선발한 제도)제로 변질될 수 있다"고 비판하며 공정성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사법연수원생들에게 특혜를 달라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로스쿨 출신과 똑같이 경쟁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서울 소재 로스쿨의 A원장은 "로스쿨 학생들의 성적이 모두 공개되기 때문에 연수원생들이 우려하는 것처럼 유력 자제들을 예비 검사로 선발하는 것은 쉽지 않다"며 "상식에 벗어나는 추천을 할 경우 학생들이 반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로스쿨 출신 우수인력 채용 경쟁에 뛰어든 곳은 비단 법무부뿐만이 아니다. 대법원은 로스쿨 출신을 대상으로 로클럭(law clerkㆍ재판연구원) 제도 운영을 검토 중이다. 법무법인 바른은 최근 공개한 내년도 신입 변호사 채용공고에서 연수원생은 10명 이내, 로스쿨생은 30명 이내로 뽑겠다고 밝혀 로스쿨생을 우대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이처럼 법무부를 필두로 로스쿨 우수 졸업생을 입도선매하려는 움직임이 표면화하자 연수원생 출신이 주축이 된 변호사업계가 연수원생과 입장을 같이 하며 발끈하고 나섰다. 대한변호사협회(회장 신영무)는 2일 "대법원과 법무부가 부처이기주의 때문에 인재 확보를 위한 무리한 경쟁을 하고 있다"며 "변호사시험 합격 전에 검사를 선발한다는 것은 다양한 경험을 갖춘 법조인을 판ㆍ검사로 임용하려는 법조일원화 정책에도 역행한다"고 비판했다. 변협은 특히 법무부와 대법원의 로스쿨 졸업 예정자 입도선매는 변호사 자격자 중에서 판ㆍ검사를 임용하도록 정한 법원조직법과 검찰청법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사태가 심상치 않게 흘러가자 법무부는 이날 오후 "로스쿨 졸업생 검사 우선 임용 방안은 확정되지 않은 상태로 향후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해 결정할 것"이라며 "추천 받은 학생들도 변호사시험에 합격해야 검사로 임용된다"며 진화에 나섰다.
사법연수원생들의 집단 반발로 촉발된 법무부와 대법원, 변협 간의 공방은 결국 법률시장의 생존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검찰 출신의 한 중견 변호사는 "이번 사태는 무한경쟁 시대로 접어든 법조계의 단면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라며 "2017년 사법시험이 폐지될 때까지 이 같은 진통은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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