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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3월 2일] 한국서 자전거로 공연장 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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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3월 2일] 한국서 자전거로 공연장 가면

입력
2011.03.01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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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우에타 아줌마셨다. 내가 일본 있을 때(한국일보는 매년 기자 한 사람을 게이오대에 1년간 연수 보낸다) 한동네 살던 마당발 파워 우먼. 외로이 달랑 혼자 와서 산다고 건강보험은 어떻게 등록하는지, 싼 슈퍼는 어딘지, 동네 병원 중 잘해 주는 곳은 어딘지 기꺼이 알려 주시던 분이셨다. 이런 노하우 덕분에 나뿐 아니라 동네 아줌마들 사이에서 그분은 영웅이셨다. 그런데 며칠 전 퇴근 후 집에 가려고 길을 가는데 그분이 명동 한복판에 떡 하니 서 계신 게 아닌가.

"웬일이에요." "아, 놀러 왔죠. 내가 원래 배용준 팬이잖아. (뒤쪽의 남자를 가리키며) 남편 꼬셔서 같이 왔죠."그러고 보니 이 아줌마 한국 드라마 '겨울연가'때문에 남편과 종종 한바탕하신다는 스토리를 들은 것 같다. "근데 남편과 같이 오셨네요." "음…." 저녁이라도 대접해 드리고 싶었지만 일본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그 길로 공항으로 간다고 하셔서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헤어졌다.

사실 이분은 소중한 은인이나 한류 팬이라는 점 때문이 아니라 어느 날의 괴팍한 행보 때문에 더 기억이 난다. 하루는 은행에 가고 있는데 이 아줌마가 자전거를 타고 가는 것 아닌가. 불러 세워서는 "어디 가세요"라고 인사했는데 뮤지컬 보러 간다고 하셨다. "뮤지컬요"라고 되물었더니 "아, 시내에 있는 공연장에"라고 하셨다. 시내 가는 길에 있는 공연장이 생각났다. 30분은 걸릴 텐데 자전거로 가시는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오랜만에 치마도 입으셨다. 좁은 치마 차림으로 자전거를 저리 태연히 잘 타실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그런데 자전거로 공연장에 가는 것은 이 아줌마뿐이 아니었다. 한 달쯤 뒤 이 공연장 앞을 지나갈 기회가 있어 유심히 관찰해 봤더니 공연 보러 온 사람 중 3분의 1쯤이 자전거족이었다.

한국에서 서울 아줌마들이 뮤지컬을 보러 간다면 무조건 자가용 타고 간다. 공연장 주변에 차 세우는 데 1시간이 걸리든 말든 그냥 무조건 자가용이다. 그래야 폼이 난다고 생각한다.

일본에서 본 또 한 가지. 요코하마(橫浜)의 해변 풍경이 좋다고 해 한번 보려고 전철 타고 가는데 중간의 한 역에서 골프백을 멘 중ㆍ노년 신사들이 일제히 내렸다. 도대체 뭔 조환지 몰라 나중에 현지 사정에 밝은 한국 사람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거기 유명한 골프장이 있는데 사람들이 그 역에서 내려서 택시 타고 간다는 것이었다. 한국이라면 상상 불가능한 일이다. 골프장이라면 당연히 기름 펑펑 써 가며 승용차로 가고 트렁크에 있는 골프백도 자기가 안 내리고 직원 시킨다.

문화 선진국은 문화 향유 방식이 한국과 차이가 난다. 문화를 즐기는 것 자체를 중시해 그외에 부수적으로 들어가는 비용은 최소화하려 한다. 추가 비용은 낭비라고 여긴다. 반대로 한국 같은 문화 후진국에선 부수적으로 드는 비용을 당연시한다. 때로는 그렇게 추가 비용이 많이 들어야 문화를 제대로 즐겼다고 생각한다. 합리성의 측면에서 보면 한참 잘못된 행태다.

문화 자체의 비용도 지나치게 높다. 한국에서 뮤지컬을 한 번 보려면 12만~13만원(대극장 VIP석)이나 든다. 상류층만 보라는 얘기다. 일본 유명 극단 사계의 뮤지컬 '라이온킹'의 경우 제일 좋은 S석이 9,800엔(약 13만5,000원)으로 거의 비슷한 수준이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절반인 점을 감안하면 엄청 높은 것이다. 이게 티켓 유통 구조가 독점화하고 지나치게 로열티를 많이 지불하기 때문이라니 당장 고쳐야 겠다.

이은호 문화부장 leeeun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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