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친구를 만나지 못해 아쉽긴 하지만 학생들과의 약속을 어길 순 없죠"
지난달 24일 오후 1시 일주일에 한번 돌아오는 꿀맛 같은 휴일, 한껏 들떠 외출을 나간 동료대원들을 뒤로하고 서울 강서경찰서 소속 방범순찰대원 오승민 일경(24ㆍ성균관대 스포츠과학부 2)과 정구영 이경(24ㆍ美 인디애나 주립대 2)은 강서구 화곡본동치안센터를 찾았다.
각종 민원인을 상대하는 지구대에 가방을 둘러멘 중학생 5명이 우르르 들어서더니 두 대원을 보자마자 "선생님"이라 부르며 달려가 안긴다.
오 일경과 정 이경은 지난 1월 7일부터 치안센터 2층에 마련된 3평 남짓한 빈 공간을 교실 삼아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과외교실은 일주일에 3번, 매 2시간씩 지구대 관할구역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무료로 진행된다. 오 일경이 중 3반, 정 이경이 중 1반을 맡고 있다. 학원은커녕 과외를 받아본 경험이 전혀 없다는 학생이 대부분. 방학 때면 공부방이나 방과 후 학교를 다니는 게 고작이었던 학생들은 일대일로 진행되는 맞춤형 수업에 크게 만족하는 눈치였다.
장모(14ㆍ신화중 1)군은 "학교에선 발음이 틀릴 까봐 우물쭈물 거리며 읽었는데 미국서 살다 온 선생님에게 발음 교정을 받으니 자신감이 붙었다. 개학하면 친구들에게 자랑할 것"이라며 으쓱해 했다. 다른 학생들도 경쟁하듯 질문을 쏟아내며 진지하게 수업에 임했다.
학생들의 뜨거운 학구열에 놀란 선생님들도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정 이경은 근무 시간 이외에 틈틈이 짬을 내 인터넷 자료 등을 보충해 수업준비에 만전을 기했다. 그는 "군대 온 뒤로 영어 쓸 일이 거의 없어 손을 놓았는데 아이들 가르치며 덕분에 감을 유지하고 있다"며 웃었다.
오승민 일경은 "방학인데도 하루 종일 학원에서 사는 친구들을 얘기하면서 아이들이 많이 불안해한다. 공부는 누가 대신 해주는 게 아니라 자기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잘 할 수 있다고 용기를 불어넣어주고 있다"고 말했다.
최모(16ㆍ마포중 3)군은 "동생이 영어 학원을 보내달라고 조른다. 부모님께 부담될 것 같아 나는 안가도 괜찮다고 말했지만 혼자 공부할 생각을 하면 사실 막막하다. 과외교실이 계속 됐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강서경찰서는 아이들의 바람에 호응해 당초 방학기간에만 운영하기로 했던 과외교실을 학기 중에도 연장해 운영할 방침이다.
강윤주기자 k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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