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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승자독식의 영화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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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승자독식의 영화판

입력
2011.03.01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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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이창동 감독의 회고전 부대행사로 열린 '감독과 관객의 대화'자리에서 한 관객이 민감한 질문을 했다. 를 상영하고 관객과 토론하는 자리였지만 느닷없이 시나리오 작가 고 최고은 씨의 불행한 죽음에 관해 이창동 감독이 어떤 위로의 말을 할 수 있느냐는 물음이었다.

대기업이 쥐락펴락하는 구조

이 감독의 대답은 이랬다. "영화계의 선배이자 고인이 다닌 학교 스승으로서 그런 질문에 답하는 것은 고통스럽다. 영화계의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고, 그런 환경을 고쳐나가도록 애쓰겠다. 단 이것만은 말하고 싶다. 고인과 직ㆍ간접적으로 관계가 있던 스승으로서 알고 있는 그는 자신의 예술세계에 대단한 자존심을 갖고 있었고, 결코 품위를 잃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고인의 죽음을 평하면서 그의 삶의 품위를 훼손하는 일만은 없어야겠다."

굶어 죽은 것으로 잘못 알려진 최초의 언론 보도에서부터 이어지는 여러 후속보도와 여론의 향배는 고인이 얼마나 부당하고 비참한 현실을 살았는지에 맞춰져 있다. 소수의 스타와 감독, 일급 스태프를 빼면 배를 곯는 영화계 종사자들의 평균적 삶의 현실에 대해 아마 이만큼 대중이 잘 알게 된 사건도 없을 듯싶다. 그렇다고 시나리오 작가를 착취하고 부당하게 대우하는 제작자들을 비난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대다수의 언론 보도는 최씨가 병을 앓고 배를 곯게 한 주범으로 영화계의 나쁜 관행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것도 진실이지만 매우 일면적인 접근의 산물이기도 하다. 한때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떵떵거렸던 한국 영화계가 어떻게 산업화의 미명을 내건 채 최저극빈층을 양산하는 전근대적인 도제시스템의 현장처럼 돼버렸는지는 좀 더 복합적으로 따져봐야 한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한국 영화산업의 가장 큰 독은 우리 사회의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승자 독식주의가 용인된 끝에 이뤄지는 대자본의 독과점 지배다. 한국에서 유통을 쥐고 있는 대자본은 언제나 슈퍼 갑이고 망할 수 없는 구조를 쥐고 있다.

영화산업의 경우 멀티플렉스 극장체인을 쥐고 있는 대기업은 영화가 개봉하면 수익의 50%를 우선 가져간다. 광고에 전혀 기여하지 않고 오로지 극장만 빌려 주는데도 수익의 절반을 가져간다.

나머지 50%를 제작사가 가져가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투자사와 나눈다. 그런데 극장을 갖고 있는 대기업은 투자를 겸하고 있기도 하다. 거기에 극장 배급료로 10%를 떼가는 걸 비롯해 온갖 수수료를 다 제작사에게 지운다. 지난해 꽤 흥행한 한국영화를 제작한 모 제작자는 대기업이 이것저것 다 떼고 제작자 쪽으로는 남는 게 없는 수익정산서를 받아 들고 기가 막혔다고 한다. 사석에서 그는 자기 몫으로 2억원만 남았어도 영화계를 떴을 것이라고 한탄했다. 과장 섞인 발언이겠지만 현재 영화계의 수익 재분배 구조는 이렇게 일방적이다.

케이블이나 DVD 시장에서 얻는 부가판권 이익이 전무한 상황에서(그러고 보니 케이블 방송도 다 극장을 쥐고 있는 대기업 차지다.) 이렇게 일방적인 독과점 구조를 방치했을 때 영화인들이 거지가 안 되는 것이 이상하다. 최근에는 대기업들이 아예 자체 제작에 나서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당연히 시장에서 퇴출되어야 할 전문성 없는 어중이떠중이 제작자들은 물론, 오랜 경험이 있는 제작사들의 노하우도 휴지조각이 된다.

이러니 모험정신 살 수 있나

2000년대 초반 한국영화가 욱일승천의 기세로 나아갈 무렵 가장 흥미진진했던 것은 불가능해 보였던 기획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고 하는 모험정신이었다. 이제 한국영화는 모험정신도,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도 사라진 채 오직 희생자들의 아우성만 가득한, 포연 자욱한 폐허와 같다. 대기업 독과점 구조의 해결 없이 어디서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김영진 명지대 영화·뮤지컬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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