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상승세가 지속되고, 중동의 정정(政情) 불안으로 국제 유가가 치솟으며 정부가 제시한 올해 거시경제 목표(5% 성장ㆍ3% 물가) 달성에 잇달아 빨간 불이 들어오고 있다. 물가목표 달성이 사실상 무산됐고, 성장률의 실현 가능성도 갈수록 낮아져 결국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잇따르고 있다. 일부에서는 ‘고성장ㆍ저물가’를 전제로 짠 경제정책 운용계획을 수정해 스태그플레이션(저성장ㆍ고물가)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오고 있다.
1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당초부터 정부 목표치보다 낮은 성장률을 제시했던 민간 경제연구소들이 중동 사태를 계기로 국제유가 전망치를 높이면서 경제성장률도 하향 조정하는 쪽으로 경제전망을 수정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2011년 평균 국제유가를 배럴당 82달러로 예상했던 삼성경제연구소는 조만간 수정 경제전망을 발표, 국제유가 전망치를 90달러 중반 수준으로 높일 것으로 알려졌다. LG경제연구원도 이달 중 87.7달러였던 유가 전망치를 90달러 후반까지 올릴 계획이다. 유가전망 수정은 성장률 및 경상수지 흑자 전망치에도 영향을 주는 만큼, 관련 수치의 조정도 불가피한 상황이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4~5% 경제성장률 ▦3% 초반의 물가상승률 ▦150억 달러 내의 경상수지 흑자를 달성할 것이라는 데에는 정부와 주요 연구기관 사이에 이견이 없었다. 당시만 해도 미국 경제의 회복세가 뚜렷했고, 국제유가도 배럴당 80달러 중반에서 안정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가 전망치가 근본적으로 흔들리면서 각종 지표도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게 됐다. 리비아, 오만, 바레인 등 산유국의 내정 불안으로 두바이유 가격은 현재 배럴당 107달러를 넘어선 상태다. 이와 관련,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국제유가가 10% 오르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최대 0.5% 포인트까지 감소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국제유가 평균치가 정부 예상(85달러)보다 20% 정도 높은 100달러 초반을 유지한다면, 성장률이 3% 이하로 떨어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일단 정부는 거시경제 목표를 수정하지 않을 계획이다. 재정부 윤종원 경제정책국장은 “유가, 농산물, 원자재 등 충격이 발생했지만 2011년이 두 달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연간 전망치 수정을 논할 단계는 아니다”고 말했다. 중동 사태가 조기에 수습되면, 미국 등 선진국 경제의 회복세에 힘입어 5%에 가까운 성장률 달성을 기대할 수 있다는 논리다.
당연히 당국 대응이 너무 안이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의 희망과 달리 중동사태가 장기화해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는 상황이 1, 2개월 더 이어지면, ‘고성장ㆍ저물가’를 전제로 짜여진 지금의 정책이 거시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부는 2008년에도 글로벌 여건이 악화하는데도 그해 7월까지 당초 제시한 6% 목표를 고수하는 등 유연한 정책운용에 실패, 성장률을 2.3%까지 떨어뜨린 전력이 있다. 민간 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확장적 경제운용을 더 이상 고집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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